Global Leading University

COMMUNITY

  • home
  • Community
  • Contents Contest
  • Previous award winning work
  • Before 2018

Community

Contents Contest

콘텐츠 공모전 | 과거수상작 | 2018년 이전 게시글의 상세 화면
2011학년도 생활수기 당선작 동상 - 차윤선
No : 28 Date : 2011-12-14 Views : 1956

 

[ 홀로서기를 위한 고백 ]

 

어머니께

지금은 자정이 넘은 지도 반시간이 다 돼가는 시간입니다. 곤히 주무시고 계시겠지요? 집에 있었다면 이 시각에 깨어 있는 제게 누우라며 한소리 하셨을 테지만 여기는 무엇이 그리 피곤한지 화장도 지우지 않은 채 잠든 룸메이트만이 있는 기숙사입니다.

과제해야 한다, 시험기간이다, 친구들과의 약속이 있다는 핑계로 벌써 한 달이 넘도록 집에 찾아가지 않았네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2시간에 갈 수 있는 거리인데도, 이렇게 집에 코빼기도 비추지 않으니 불효녀라 하셔도 달리 변명거리가 없어요. 기말고사가 얼마 남지 않아 다시 또 핑계를 대기 전에 다음 주쯤에는 꼭 집에 갈게요. 미리 띄어 보내는 편지에 마음을 담아 봅니다.

어머니, 지금껏 마음 터놓고 제 속마음을 모두 드러낸 적이 없었지만, 오늘 밤만큼은 새벽이 오고 아침이 밝아오더라도, 제 맘속 모든 것을 숨김없이 드러내고자 합니다. 아침이 되면 없애버리려고 할 고백이겠지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만큼은 저 자신에게 그리고 어머니께 진실로 솔직해지려고 합니다.

처음, 집이 아닌 다른 곳에 누워 자던 때의 기억이 납니다. 막 교복을 벗어 던지고 이 학교에 입학했을 때이지요. 대학생이 된다는 사실도, 스스로 짠 시간표에 따라 찾아다니는 강의실도 흥분되는 일이었지만, 무엇보다 20여 년을 함께한 부모님과 떨어져 기숙사에 살게 된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습니다. 불안함과 긴장 그리고 설렘 속에서 시작된 이곳 생활은 말 그대로 자유였습니다. 지금 와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그 당시 저는 이 기숙사와 제 방을 가히 천국이라 생각했습니다. 고등학생까지 옥죄여오던 모든 것들에서 해방이라고 느꼈고 대학생이라면 이렇게 살아야지라며 자유를 만끽했습니다. 술을 진창 마시고 통금 시간 직전에 허겁지겁 들어오던 일도 허다했고 그렇게 놀다 흥에 취하면 까짓것 5시까지 마시다 들어가야지라며 밤새워 청춘의 잎을 하나씩 떨궈내기도 했습니다. 기숙사에 살지 않았다면 꿈도 못 꿨을 일을 그렇게 한참이나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생각했기에 마음 한편에 드는 죄책감을 무시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제가 누리는 이 자유에 그 어떤 것도 방해물이 되지 않았고 제가 머무는 작은 방은 잠깐 씻고 자기 위해 존재하는 그런 의미 의상은 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큰 간섭을 하지 않는 이 기숙사가 참으로 다행이다 생각하기도 했었죠.

그렇게 1년을 청춘으로 빙자해 술잔으로 흘려보내고, 처음으로 후배를 받아들일 나이가 됐습니다. 고작 1학년을 지나왔을 뿐인데도 더 어른스러워져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들더군요. 술자리에 가는 대신 도서관과 기숙사를 드나들었습니다. 그러자 혼자 있는 시간이 생각 이상으로 많아졌습니다. 친구들의 제안을 한두 번 거절하다 보니 더 이상 저를 찾지 않더라고요. 그리하여 저는 1학년 때와는 완전히 다른, 혼자이지만 오로지 저만을 위한 2학년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3개의 수업을 연속으로 듣고 6시에 시작하는 전공 실험까지 듣고 오면, 920호 제 방은 안락함그 자체였습니다. 조그맣지만 포근한 침대가 있고, 책과 영화를 볼 수 있는 휴식의 공간이죠. 천근만근인 몸을 뜨거운 물로 씻어내고 잠깐 책상에 앉아 하루를 곱씹어보다가 침대로 옮겨와 책을 보다 잠이 드는 일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안락함입니다. 그럴 때면 찬바람 막아주는 이 방이 얼마나 고마운지요.

게다가 정신없이 바쁜 날에는, 전공 수업이 시작하기 30분 전, 기숙사 식당에서 홀로 앉아 밥을 먹어도 수업시간에 늦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꽉 찬 머리는 외로움을 전혀 감지하지 못합니다. 외롭기는커녕 밥 먹는 다른 사람들을 구경하며 오늘 하루도 알차게 보내고 있음에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는걸요.

그러나 어머니, 수업이 없는 금요일이나 주말에 기숙사에 남게 되면 안락하다는 표현이 무색해지고 맙니다. 지금껏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런 날에는 정말이지 외롭다는 표현 밖에 제 심정을 표할 길이 없습니다. 바로 어제는 혼자 밥을 먹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밥을 먹는 일도 고통이 되기 일쑤입니다. 한 두어 명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가, 집에 갔다느니 약속이 있다느니 하는 답장을 받으면 저만 혼자인 것 같은 그런 기분에 금세 우울해지고 누군가라도 와서 툭 치면 눈물을 쏟아 낼 것만 같은 기분이 되고 말죠. 한때, 바로 몇 시간 전만 해도 편안하다 생각했던 이 방은 영락없는 감옥으로 변하고 마는 것입니다.

언젠가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몸짓 하나하나가 외로운 날에는 이 말이 자꾸만 떠오르더군요. 수백 개의 방에, 수천 명의 사람들이 보고자 마음먹는다면 5분 안이라도 볼 수 있는 한 캠퍼스 그것도 같은 건물 안에 있는데도, 우리는 군중이지만 각자의 방에 각각 홀로이기 때문이죠. 어머니, 제 심정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가시나요?

똑같은 방일 뿐인데도 불구하고 제 마음 따라 이 방은 애증을 번갈아가며 그 안에 저를 품고 있습니다. 어쩌면 저는 이 청춘의 혼란기를 안락함과 외로움 사이를 휘저으며, 진정한 자유를 찾아 헤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아무 일 없는 주말, 집에 다녀와도 충분한 시간이면서도 때로는 안락하고 때로는 사무치게 외로운 이 혼란스러움을 외면하기 싫어 이곳에 남아 있기도 했습니다.

집으로부터 도망쳐 나와 아지트 같았던 지난 1년과 전공공부와 과제에 둘러싸여 스스로를 가두던 이번 1년은 누가 보아도 같을 것 하나 없는 새로운 경험입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겪으며 배워가는 것이 아마도 사는 것이겠지요. 앞으로 남은 2년은 어찌 흘러갈지 또다시 살게 될 작은 방은 무엇의 공간이 될지 기대도, 걱정도 됩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앞으로의 2년은 지금까지의 2년과는 확연히 다른 나날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어제의 제가 오늘의 제가 아니듯이 올해와 내년은 제가 변하는 만큼 변할 것이 확실하니까요. 지금까지 시행착오를 겪었듯이 아마 내년도, 그다음 해에도 또 실수하고 그것을 이겨내고 성장하겠지요. 이렇게 서서히 홀로서기를 배워가는 것 같습니다. 대학교 2학년을 마칠 즈음에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도 큰 발전이라 느끼며 저 자신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내고자 합니다.

어머니, 그러면 다음 주에 집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벌써 밤하늘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하는군요. 그동안 안녕히 계세요.

당신의 딸 올림.

콘텐츠 공모전 | 과거수상작 | 2018년 이전 게시판의 이전글 다음글
Next 2011학년도 생활수기 당선작 동상 - 이현용 2011-12-14
Preview 2011학년도 생활수기 당선작 동상 - 장민석 2011-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