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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동상]집 나와도 안 고생
번호 : 145 등록일 : 2013-12-01 조회수 : 4411

집 나와도 안고생

비가 오듯 땀이 나고 온몸이 시체처럼 차가운 날이었습니다. 과제, 동아리, 시험, 교우관계 모두가 한꺼번에 삐걱거리며 제게 스트레스를 한가득 안겨주었고, 끝내 몸과 정신 모두가 고난을 이겨내지 못해 주저앉아버리고 만 것입니다. 먹는 것마다 소화하지 못해 체하고, 억지로 위장에 욱여넣은 음식을 기침 하다가 다시 쏟아내는 것이 일상다반사였습니다.

특히 그 날은 소화제를 챙겨 먹고도 상태가 좋지 않아 숨을 쉬기도 힘들었고, 열이 올라 머리는 뜨거웠지만, 손발에 피가 돌지 않아 저릿저릿하기까지 했습니다. 저녁도 거르고 수업을 마치자마자 침대에 누웠지만 잠들지 못하고 고통에 뒤척이다 간신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새벽 한시경, 룸메이트 언니의 스탠드 빛에 문득 잠에서 깨었습니다. 언니는 진통제를 찾는 저를 보고 어디 아프냐고 물었고, 체하고 열이 많이 나는 것 같다고 하자 그 새벽에 휴게실까지 한달음에 다녀와 물과 따뜻한 보온주머니를 건네주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3년 내내 기숙사에서 살았습니다. 학교는 차를 타고 한참 나가야 사람 사는 지역이 나올 정도로 외진 산 중턱에 있었습니다. 폭설이라도 한번 내리면 학교에 고립되어 나갈 수 없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기숙사 친구들과 24시간을 함께 지내면서 서로 힘든 일 좋은 일 모두를 알 수밖에 없었고, 그만큼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감정이나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입시나 시험으로 인해 극도로 예민해질 때마다 저는 약한 몸이 버티지 못해 앓아누웠고, 집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현실에 서러워했습니다. 아플 때마다 집이 그리웠고, 누군가가 나를 보듬어주고 신경 써주길 바랐습니다.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집과 학교가 멀어 기숙사에서 지내게 되면서 저는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생활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바람과는 달리 저는 어김없이 자주 골골대며 좀비처럼 도서관과 기숙사, 강의실만 돌아다녔습니다. 1학기 때 생각지도 못한 높은 성적을 받고 그 성적을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여름학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아픈 날이 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보다 더욱 저를 감싸줄 수 있는 존재가 매우 절실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룸메이트 언니가 어디 아파?”라고 물어봐 주었을 때, 저는 그저 그 말이 단지 룸메이트로서 형식적으로 걱정해주는 말이라 할지라도 너무 고마웠습니다. 더군다나 형식적이지 않고 저를 걱정하는 진심이 언니의 행동에서 고스란히 느껴져 정말 감동했습니다. 언니 역시 집에서 나와 타지에서 생활하면서 힘든 일이 적잖이 있을 텐데, 외롭고 고된 상황에서도 동생 아파할 때 챙겨주고 걱정해줬다는 것에 대해 부모님과 저 모두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사실 제 룸메이트의 첫인상은 무서움이었습니다. 1학기 기숙사 퇴사 후여름학기를 들으려 다시 입사할 때, 룸메이트의 학번이 12학번 선배인 걸 확인한 순간부터 무서웠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선배에게 깍듯이 대하고 절대적인 상하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선배라는 존재는 대학에서도 어려운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더 놀랐던 것은, 입사 확인란에 서명할 때 본 룸메이트의 학과가 생활지도조교였던 것입니다. 왠지 하나하나 각박하게 점수를 매길 것만 같다는 선입견에 잔뜩 긴장한 채 부담감에 처음 며칠이 심적으로 괴로웠습니다. 서로 방에서 마주치는 시간이 바쁜 아침이나 피곤한 밤밖에 없고, 전공도 달랐으며 대학원생과 학부생 사이의 차이 때문에 대화할 소재도 없어 어색한 나날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언니는 숫기 없고 애교 없는 룸메이트 동생과 조금더 친해져 보려 수강신청이나 학교생활과 같은 제게 닥쳐있는 이야깃거리를 꺼내주었습니다. 선배로서 이러이러한 과목은 어떻더라 하는 경험담도 재미있게 말해주고 조언해주기도 했습니다. 함께 생활하면서 제가부족한 점에 대해 불평스러운 이야기를 한 적도 없었고, 흔히 생각하는 생활지도조교의 이미지처럼 날카롭고 냉정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한학기 동안 같이 사는데 뭐라도 먹자며 야식도 시켜먹고, ‘룸메, 룸메부르면서 같이 떠들고 웃어줄 땐 언니의 따뜻한 배려가 가슴 깊이 와 닿았습니다. 아침에 서로 알람을 엇갈려 맞추고 일어나지 못할 때도 밤에 돌아와 아침에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다며 웃으며 먼저 사과해주기도 했습니다. 시험기간을 제 게으름에 대한 변명으로 삼아 방을 어지럽히고 빈둥댈 때도 말없이 가서 공부하라며 청소할 때도 있었습니다. 화장품이 많이 남는다던가, 비타민제가 남는다며 챙겨줄 때면 터울 많이 나는 친언니 같아서 또 고마웠습니다.

흔히들 집 나가면 고생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많이 아프고, 학교생활과 팀 과제가 힘들더라도 기숙사에서의 생활만큼은 고생스럽지 않았습니다. 집이 그리워도 언니가 제게 따뜻하게 대해준 것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며 느낄 수 있는 외로움을 덮어주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언니를 챙겨줬던 것이 없어 아쉽고 후회가 됩니다. 진짜 아픈 날이 아닌, 단지 조금피곤해서 이른 오후에 잠시 자는 걸 봤을 때도 언니는 어김없이 어디 아픈 데 있니?” 하고 물어봐 주었습니다. 다른 기숙사 사생 친구는 룸메이트 간의 마찰로 기숙사 생활이 지옥이라고 했지만, 먼저 다가와 주고 배려해준 언니는 최고의 룸메이트였습니다. 앞으로 또 다른 룸메이트를 만나면, 단순히 같이 생활하는 남남인 룸메이트가 아니라 어디 아픈 곳 있니?” 하고 묻는 다정한 사람으로서 즐겁고 따스한 기숙사 방 분위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얼마 안남은 2학기 기간 동안 언니가 제게 해준 만큼 동생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즐겁게 지냈던 동생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학기가 끝나 퇴사하면 다시 얼굴 보기 힘들어질 텐데, 그러기엔 너무 고맙고 다정한 언니였기에 가끔은 연락해서 밥 한번 먹고 싶은 룸메이트로 남도록 노력하려 합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사람의 온정(溫情)이 느껴지는 따뜻한 인연을 만들어준 언니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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