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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학년도 생활수기 당선작 동상-LEE SUNGAH
번호 : 61 등록일 : 2012-11-19 조회수 : 1843

 

[ 일상다반사 ]

 

울창한 나무들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남학생만 빽빽한 성균관대학교 율전 캠퍼스. 이 중 여학생들로만 가득한, 아마도 유일한 장소가 있다. 바로 여자기숙사이다. 나는 의관 기숙사 2층에서 생활한 지 이제 거의 1년이 다 되어 간다. 집에서 지내는 시간보다 기숙사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길다 보니, 다른 이들에게는 으레 기숙사를 집이라고 표현하는 경지에 까지 이르렀다.

 

이제는 집 같은 의관 기숙사 2층에선 소소한 일상들이 매일매일 일어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소한 일상이라면 보통 아침부터 시작해 저녁까지의 일들을 생각하겠지만, 의관 2층은 대부분이 대학원생들로만 이루어져 있어서 사정이 조금 다르다. 우리의 일상은 저녁부터 시작된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이미 잠들법한 캄캄한 새벽에 샤워실로 걸어가다 보면, 지나는 방문들 안쪽에서 룸메이트와 까르르 넘어가며 이야기하는 사생들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샤워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자리끼를 떠놓으려고 정수기 앞으로 가면 정수기와 TV 시청실 사이를 서성이며 연인과 전화를 끊지 못 하는 사생도 늘 한둘쯤은 늘 있다. 지루하지만, 또한 평화로운 모습들. 이것이 대학원 기숙사의 일상이다.

사실은 대학원이라는 곳이 그다지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는 공간이 아니라서 이런 기숙사의 평화롭고 반복되는 생활이 지겹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매일 매일이 비슷한 이런 일상에도 가끔씩은 평소와 다른 일이 일어난다.

 

이번 여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늦여름, 장마 때 다 오지 않았던 비가 뒤늦게 쏟아지던 시기였다. 지금은 벌점을 책정한다고 해서 복도에 아무것도 내놓지 않지만, 그 때만 해도 비가 온 후에는 대부분의 사생들이 우산을 펼쳐서 방문 앞에 내놓곤 했다. 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복도에 색색별로 옹기종기 서 있는 우산들이 귀여워서 피식 웃었던 기억도 몇 번 있다.

그런데 그 날은 조금 이상했다. 복도에 우산들이 다 접혀서 누워있는 것이다. 통행하기는 편리했지만왜 우산을 안 펴놓고 다 눕혀놨지? 그것도 이 층의 모든 사생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였고, 피곤했던 나는 우산을 펴서 세워놓고 후다닥 공용욕실에서 샤워를 마치곤 금세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방문 밖에 나온 나는 돌연 오싹해 졌다. 펼쳐놨던 내 우산을 포함한 문 밖의 우산이 모두들 가지런히 접혀져 있었던 것이다. 한창 흉흉한 뉴스가 많던 때라, ‘매체에서 말하는 유형의 정신이상자가 여자 기숙사에 침입을 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그 다음으론내가 뭐에 홀려서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잠이 덜 깨 몽롱한 정신으로 잠시 멍하게 서 있었다. 답을 내리지 못 한 나는 무서운 것을 피해가듯 살금살금 접혀있는 우산을 피해 샤워실로 향했다.

의문의 우산 접이범은 그 날 저녁에 바로 밝혀졌다. 바로 내 방문을 두드리고 공지사항을 전달하던 기숙사 조교였다. 소방법에 위배되어 문밖에 우산을 펼쳐서는 안 되는데, 전달이 되지 않아 마음대로 우산을 처분할 수도 없고 벌점을 줄 수도 없어서 선택한 방법이었다고 조교는 말했다. 앞으로는 벌점을 매길 예정이니 우산을 펼쳐서 밖에 두지 말아 달라고 하곤 조교는 방을 나갔다. 아무도 내 머릿속을 보진 못 했지만, 아침에 오만 상상을 했던 나의 모습에 나는 스스로 조금 멋쩍어 졌다. 그리곤 노란 스폰지밥 파자마를 입고는, 펼쳐져 있는 100여개의 우산을 다 접고 다녔을 조교의 모습을 생각해보니 참 고생이 많겠구나 싶었다.

그 날 이후 복도에 옹기종기 우산파티는 없어졌다. 그 후에도 나는 비가 오는 날에 무서운 기분이 들어서 귀가를 할 때면 그 날의 생각을 했다. 별별 상상을 다 했지만 실상은 아무 것도 아니었던 생각을 하면 무서움도 조금쯤은 가시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 말고는 기숙사에서 그다지 별난 일이 있었던 적이 없다. 그나마 기억하는 별난 일 조차도 이렇게 평화롭고 귀여운 곳이다. 언제나 집이 평화로운 것처럼, 기숙사도 평화롭고 당연한 공간이다. 이렇게 말하면 나더러 너무 무감한 것 아니냐고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기숙사는 대체로 평온하다. 특히나 점심식사를 하고 잠시 방에 들르는 오후, 기숙사는 마치 멈춰버린 비디오 화면처럼 고요하다. 자동문 쪽에 있는 옥상으로 해가 쏟아져 들어오는 날이면, 나는 가끔 햇살을 바라보며 혹시나 내가 혼자 이상한 세상에 떨어진 건 아닌가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점심쯤에는 정말 이 세상에 온전히 나밖에 없는 것처럼 고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고요함이 참 좋다.

 

이렇듯 대체로는 생활에 만족하지만 간혹 사람이 많이 몰려서 씻기 위해 공용욕실에서 줄을 기다릴 때나, 세탁기 쟁탈전을 벌일 때는 기숙사가 지긋지긋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잠시일 뿐. 때 되면 에어컨 필터를 갈아주고, 화장실이나 공용욕실 청소를 해 주시고, 삼시 세 끼 시간이 되면 밥을 해 주시는 분들을 볼 때면, ‘그래도 나 잘 살고 있구나.’하고 생각한다. 때때로는 이런저런 생각들도 해 가면서 오늘도 가을하늘의 얼굴을 한 일상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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