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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칸을 넘어
번호 : 258 등록일 : 2017-11-27 조회수 : 643

너는 애가 통 연락이 없니. 요즘 뭐 하고 살길래 그래, 바쁘니?”

미안, 엄마. ... 좀 바쁘네.”

혈연이 친소보다 우선이라는 것은 옛말이다. ‘요즘 무얼 하고 사느냐, 친소관계로 따지자면 꽤나 멀리 있는 사람이 툭 하고 던질 만한 질문인데, 이제는 그걸 내게 엄마가 한다. 언제부터 이 관계가 소원해졌는가를 따져보기에는 복잡하지만, 대강 나와서 살기 시작한 때부터였으리라고 추정하고 있긴 하다.

그렇지만 가족이란 친소 없이 오직 의무감으로만 묶인 관계라고 설명하기에는 생활 곳곳에서 아이러니한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그러한 일들이 반례 마냥 위의 명제를 깨부순다. 예컨대 요즘 무얼 하냐는 저 질문도, 남들이 했다면 별 생각 없이 지나쳤겠지만, 엄마가 하니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부터 시작해서 내가 지금 그 질문에 흠뻑 빠져 있는 것이다. 그래, 대체 요즘 무얼 하고 살기에 가족에게는 연락 한 통 없는 삶이 되었나. 아니, 실은 가족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한 방에 함께 사는 룸메이트와도 말 한 마디 나눈 지 오래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생각할 겨를이 있었더라면 연락 한 통 정도는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생각할 겨를이 없는 삶이란 삶을 사는 사람의 주관적인 생각이나 행위보다는 그저 그 사람을 둘러싼 것들에 의해 타율적으로 정의되는 경우가 많다. 요즘 나를 둘러싼 것들이 나를 규정한다. 그리하여 생각해보건대, 요즘 나를 둘러싼 것은 아득함이다. 나는 아득함 속에 산다.

기숙사에서 사는 일은 거리로 따지면 아득함과는 거리가 멀다. 이 건물에는 규격화된 안정감이 있다. 같은 형태의 방이 줄지어 있는 이 건물에서,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보이는 왼쪽 복도의 끝에 산다. 여섯 개의 방을 이동하면 나의 방이다. 모두가 공유하는 라운지 쪽으로부터 여섯 칸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사는 것이다.

또한 아침에 눈을 뜨면 보이는 천장은 이런 것이다. 굉장히 규격화된 상태로 배열되어 있어 괜한 안정감을 주는 천장이다. 왜 이것이 안정적이냐, 이를테면 이 규격성을 이용하여 내 침대와 룸메이트의 침대까지의 거리를 스스로 헤아릴 수 있는 것이다. 내 시선에 들어오는 가장 중앙의 합판을 기준으로 하면 옆으로 6칸 내지 7칸을 이동한 거리가 룸메이트의 자리 중앙이다. 그만큼의 거리에서 우리는 함께 산다.

거리에 집착하는 이유는, 이렇게 쉽고 명확하게 헤아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즘 들어 나는 부쩍 멀어진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룸메이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요즘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대해 그렇다. 소등한 밤에 그저 누워 잠을 청하고 있자면, 그 거리가 6-7칸 정도임을 알기는 알아도 왠지 모르게 두 침대가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 왼쪽 끝 아주 멀리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잠에서 깨서는 밝아진 천장을 보며 칸을 세는 버릇이 생겼다. 하나, , ... 여섯, 일곱.

밤늦게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면 복도에도 으레 불이 꺼져 있곤 하는데, 그렇게 되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방으로 걸어가는 그 길까지도 멀어 보이는 것이다. 그때 기존에 알던 여섯 칸 정도의 거리는 끊임없이 확장된다. 일부러 숫자를 세며 걸어가려고도 하지만, 왠지 모르게 섬뜩한 느낌이 드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무언가 멀어지는 것이 두렵다.

그것은 멀어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리라. 집을 떠나와 몇 학기째 정착한 기숙사 안에서는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나 그이가 스무 살의 새내기이든 나와 동갑인 고학년이든 요원한 것은 매한가지이다. 우리는 함께 웃으며 친해지고, 때로는 함께 야식을 먹고, 다음 주부터는 내려가서 운동을 하자고 다짐하다가는 이내 지켜지지 못할 것이라 실소를 터뜨린다. 그렇게 행복하게 친한 생활이 있다 하더라도 밤이 되면 이내 아득해지는 것이다. 그 아득함으로의 필연적 회귀가 두렵고 싫다. 누군가 이렇듯 아득해지는 나를 붙잡고 자신은 나를 마음 깊이 이해한다는 뜻으로 폭 안아주었으면, 그렇게 폭 안겨 있으면 이 아득한 불안함이 풀릴 것도 같다. 그러나 아무리 친한 이들이라도 거리는 딱 합판 여섯 칸까지다. 여섯 칸이라 함은, 나는 삶이 바쁜 고학년이기에 새내기인 너를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필연적으로 있으며 그것은 다른 의미에서 삶이 바쁜 새내기인 너도 그렇다, 혹은 같은 고학년이라도 나는 시험에 몰두해야 할 수험생이기에 이래저래 바쁘게 살아야 하는 취준생인 너를 완전히는 이해할 수 없으며 상황을 바꾸어도 그것은 매한가지이다, 뭐 그러한 거리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지 않더라도, 심지어 너무나 사랑하더라도 필연적으로 여섯 칸을 느끼고 산다.

어른들이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요즘 것들은 정이 없다는 것이다. 일전에 엄마가 나를 두고도 집안의 다른 어른들께 하시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얘는 애교가 없다고. 아득함을 느낄 때면, 정이 없다는 류의 말에 대한 반발심을 넘어 그것이 사실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때아닌 반성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도 아닌 것이, 정이 없다면 아득함이 불안이나 공포로 내게 다가올 이유가 없다. 나는 그 여섯 칸마저도 멀어지지 않을까 그것이 무서운 것이다. 그것은 무정하기보다는 무정이 더욱 무정다워지는 사태를 겁내는 마음이리라.

그러나 나는 왜 이토록 긴 글에 나의 정 없지 않음만을 증명하는가? 그것은 괜한 변명이 아닌가. 물리적으로 여섯 칸의 거리를 두고 살더라도 심리적으로 멀어지고 싶지 않음을 표현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아득함이 두렵다면 손을 잡으면 그만이다. 그렇게 쉬운 것을 바쁘다는 말 속에 파묻고 살았다.

취업을 하겠다는 노력으로 공모전 준비를 하러 다니는, 서로 바빠 얼굴도 잘 보지 못하는 룸메이트를 위한 꽃을 샀다. 나는 그의 노력이 구체적으로 무언지, 그의 일상에서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니는지 모른다. 그것을 우리의 여섯 칸이라고 한다면 이 꽃은 그 여섯 칸을 사뿐히 걸어가 그의 마음을 조심스레 두드리며 작은 울림을 전할 것이다. 너와의 여섯 칸이 더욱 멀어질 것이 두렵다는 마음을 몽땅 전하기에는 과하며, 전하지 않기에는 비겁하다. 그것을 가장 적절히 전하는 방식은 일상에 웃음을 주는 꽃 한 송이나, 그저 먹는 치킨이 아닌 위로를 위한 야식이나, 그저 나누는 잡담이 아니라 소등한 밤에 조용한 마음으로 서로의 하루를 돌아보며 소소히 이야기하는 그런 대화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천장의 여섯 칸을 애써 눈으로 헤아리지 않더라도 마음으로 손을 잡은 상태가 된다. 그토록 그리던 따스한 온기가 조금 마음속으로 전해 온다. 미소를 띠며 잠에 든다.

그러한 생각은 가족에게로 닿는다. 오늘 밤에는 먼저 전화를 할 계획이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 그립더라고, 조만간 집에 내려갈 테니 꼭 안아달라고, 어느새 이십대 중반이 되어가더라도 딸은 딸이라고 갖은 응석을 부려 볼 생각이다. 작은 하나의 행동이 일상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 믿는다. 대학에 와서는 집에서 나와서 살게 되었다. 우리는 멀어진 만큼 애틋해졌고, 그러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고민하다가는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게 되는 것이다. 작은 포스트잇에 작지만 큰 다짐을 써서는 책상 앞의 보드에 붙여 놓는다. 사랑하자는 다짐을 하나의 행동으로 담았다. 여섯 칸을 넘어, 마음의 발자국으로 따뜻하게 다가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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