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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동상]서예라는 것을 해보았습니다.
번호 : 147 등록일 : 2013-12-13 조회수 : 4135

외부에서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운동하는 물체는 계속 그 상태로 운동하려고 하고, 정지한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 한다고 말하는 관성의 법칙은 비단 마찰이 없는 바닥 위에 놓인 질량 M의 물체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아침 9시 수업을 듣기 위해서 8시까지는 일어나야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자신을 볼 때, 아침 8시에 일어나려면 밤 1시에는 자야하는데 2시까지 잠들지 못하는 자신을 볼 때 지금 내가 이러고 있는 것은 관성의 법칙 때문이야 라는 생각은 한 번쯤은 해볼 법하다. 그러한 것들 중에서는 취미 역시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허구한 날 공부에 치여서 살다보니 특별한 취미 없이 술자리나 게임으로 밖에 스트레스를 풀 수밖에 없었다. 물론 예전에는 그러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군대도 전역하고 슬슬 새로운 인생의 2막을 펼치고 싶었다. 내년이면 쓰게 될 자기소개서 취미 란을 독서라는 애매모호한 것을 써놓을 수는 없지 않겠나.

어찌되었든 간에 말하고 싶은 것은 이제는 새로운 취미를 갖고 싶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첫 학기는 그냥 지나가 버렸다. 새로운 취미를 즐기기 위해서는 동아리에 가입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수가 없는데, 역시 복학생의 입장에서 동아리에 가입하기란 것이 막상 겪어보니 정말로 두꺼운 얼굴이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내가 인간관계 관리가 자연스럽게 되는 타입의 사람이 아니다 보니 동아리 가입은 결국 포기했다.

그러던 차에 이번 학기가 시작하면서 기숙사에서 취미강좌를 진행한다는 소식을 접했고 바로 신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역시 요새는 요리도 잘하는 남자가 대세지 하는 얄팍한 요량으로 운영실을 찾아갔으나 벌써 문 앞에 요리 강좌는 인원이 다 찼다는 공지가 붙어있었다. 그러다보니 다음으로 관심이 간 곳은 서예였다. 결국 소거법에 의한 선택이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기왕 시작한 것 빼먹지 말고 끝까지 해보자라는 열의로 가득 찼다. 한문 서예를 한다고 하면 확실히 고상한 것이 뭔가 있어 보이지 않는가. 실제로 배우는 동안 주위로부터 그러한 반응을 빈번히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서예 강좌가 시작하게 되었지만 6명의 수강생 총원은 서예 강좌가 비인기 강좌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실망스럽지는 않았던 것이 사람 수가 오히려 적다보니 선생님에게서 확실히 지도받는다는 느낌이 들었고, 떠들썩하지 않고 살짝 가라앉아있는 듯 한 분위기가 서예에 집중하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누구나 어렸을 때에는 멋모르고 대충 한번쯤 잡아봤을 붓이지만 확실히 이제 와서 서예를 해보니 참으로 매력 있는 활동임을 알았다. 낮에 언짢은 상황을 겪었다고 해도 의자에 앉아서 벼루, 먹물, 종이 세팅을 끝내고 붓을 들면 그 때는 정신을 온전히 붓 끝과 붓 끝이 그리게 될 획에 쏟을 수밖에 없다.

집중해서 한 획을 긋고 다음 획을 긋기 전에 짧은 순간에 탁 놓이는 그 느낌. 이쯤에서 터져 나오는 짧은 여유. 그리고 붓을 들고 다시 집중. 물론 손은 글자를 쓰고 있지만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마치 쇳덩이를 찬물과 뜨거운 용광로 속을 왔다 갔다 하는 담금질과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서예를 한다고 해서 지금 당장의 과제는 어떻게 해주지는 못하지만 살아감에 있어서 어쩔 수 없는 막연한 불안감 따위를 덜어주는 효과가 나에게는 조금 있는 것 같다. 여기서 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쓰고 있으면 계속 대화를 하면서 즐길 수도 있으니 그것도 좋은 점인 듯하다.

여차저차해서 지금은 이제 모든 강의가 끝났다. 맨 처음에 시작했을 땐 자 긋기부터 시작했는데 이번 주에 전시용으로 써낸 작품을 보니 참 뿌듯하다. 전시용으로 이번에 내가 써서 제출한 작품은 盡人事 待天命이라는 글귀였는데 선생님께서 한번 써보고 싶은 좋은 한문 성어가 있다면 자유롭게 정해도 된다고 하셔서 골라보았다. '사람의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라는 뜻이다. 풀어서 설명해보면, 여러 가지 일들을 헤쳐 나갈 때 최선을 다 하더라도 잘 될 때도 있고 잘 안될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하늘의 뜻과 잠시 맞지 않았던 것뿐이니 실망치 말고 맡은 일에 항상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옳다는 뜻인 것 같다. 처음에 썼을 때는 굉장히 어설프기 짝이 없었지만 몇 십번 반복해서 써보니 마지막에는 꽤 그럴듯한 모양이 된 것이 환급을 떠나서 수업 안 빠지고 매번 오기를 잘한 것 같다.

마지막 수업 날에 선생님께서 내년에 같은 강의가 열리면 또 올 거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 때는 분위기상 안 간다고 하면 좀 뭐시기 할 것 같아서 일단 신청하겠다고 대답은 했다. 하지만 지금 글을 쓰면서 생각을 해보니 역시 내년에도 별 일이 없다면 신청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 설마하니 별일이 있을까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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