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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학년도 생활수기 당선작 은상 - 강석훈
번호 : 64 등록일 : 2012-11-19 조회수 : 2423

 

 

[ 내 친구 피카루 ]

 

 

 

학부생 때부터 이 학교 학생으로 지내며 자취, 하숙, 통학, 동거(남자..), 기숙사(예관 빼고 다 살아봄) 등 모든 주거형태로 살아본 경험으로 기숙사가 제일 저렴하고 편하다. 꼬박꼬박 세끼 차려주고 관리부터 해서 복지시설까지 모든 것이 다 좋다.

 

하지만 기숙사의 가장 큰 묘미는 바로 룸메이트라고 생각한다. 학기마다 달라지는 룸메이트가 어떤 인물일지 설레는 마음은 학창시절 새 학년 새 반에서 어떤 짝이 생길지 기대하는 마음과 같을 것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여태까지 마음 맞고 착실한 룸메 들을 만나서 갈등 없는 시간들을 보내왔다. 그렇게 기숙사 생활을 한지 일년이 지나고 올해 2학기가 시작되던 해에 룸메이트의 자취선언으로 나는 다시 새 룸메이트를 얻게 되었다.

 

 

 

나의 지금까지와는 달랐던 조금은 특별한 룸메이트를 맞이했던 학기가 시작되기 전 일요일 밤. 주말 간 잠깐 집에 들렸다 학교로 돌아오며 방이 아직 비어 있겠지란 생각으로 문을 열려던 찰나, 방 안에서 처음 듣는 언어로 시끌벅쩍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외국어로 두명 이상이 대화하는 소리였다. 나의 새 룸메이트가 외국인이란 사실에 놀라기도 했지만 학기 초부터 친구들을 방에 불러 논다는 생각에 약간 불쾌하기도 하였다.

 

흠 그래도 기에 눌리면 안되지 초장에 이런 건 잘못됐다고 의사표시를 해야 겠다라고 맘을 굳히며 방문을 열자, 이게 왠일... 상상과는 달리 비쩍 마른 흑인 한명이 화상으로 영상통화를 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그는 나를 보며 활짝 웃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헬로우를 외쳤다. 머릿속이 복잡해지며 난 벙찐 표정으로 ...하이라고 답했다.

 

내 한 학기 아니 어쩌면 졸업 전까지 같이 있어야 하는데 의사소통은 어쩌지? 외국인과 같이 생활은 해보고 싶었는데.... 유일하게 쉬는 내 공간인데 불편하겠다... 등등 여러 생각과 만감이 교차했다. 그는 나에 대한 궁금함이 폭발했는지 영어로 매우 긴 문장을 얘기했다. 토익에서나 듣던 그런 문장들을.. 영어에 유독 약한 나는 겸손해진 태도로 리스닝 테스트를 하듣 귀 기울여 한 단어 한 단어를 듣고 초등학생 수준의 답변만을 늘어놓았다. 그리고는 내일 아침수업도 고려하여 “I’m tired, so sorry”라고 하며 침대에 누워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미안한 태도였다.

 

 

 

그날 이후로 나는 연구실에서 칼퇴하던 시절은 사라지고 기숙사가 더 불편한 마음에 일부러 늦게 퇴근하곤 하였다. 그의 이름이 피카루이고 아프리카쪽 에디오피아에서 왔으며 나와 같은 전공이었다는 점, 그의 형은 우리학교 물리학 교수였다는 사실 등등을 알기 전까지는 꽤 긴 시간이 흘렀다. 회피성 대화로 하루하루 짧게 애기했던 것이 다였기 때문이다.

 

내가 퇴근하고 방문을 열면 피카루는 항상 화상통화를 했다. 한국말도 전혀 못하던 그는 이 먼 나라에서 외로움을 버틸 방법은 자국 친구들과의 영상통화 뿐인 것 같았다. 향수의 그리움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약간은 측은해보였다. “그래 이왕 같이 살게 되고 이것도 인연이니 내가 적극적으로 다가가자이런 맘이 들게 한건 그런 외로움에도 날 항상 웃는 얼굴로 반겨준 그의 호의였다.

 

 

 

그 때부터 난 그를 위해 더불어 내 자신도 위해 영어공부에 매진하였다. 국제어 강의를 듣고 영어공부를 하고 숙소에 와서는 네이티브 스피킹이라니... 이건 내가 한국에 사는 건지 미국에 사는 건지도 헷갈릴 정도였다. 그날 배운 영작문을 그에게 말하면 그는 성심성의껏 대답해 줬고 잘 안 되는 의사소통으로 우리는 서로 마음을 열게 되었다. 이렇게 순수하고 착한 형인데 지금까지 퉁명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피카루 형은 한국어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학교생활을 하는 데에 여러 가지로 도움이 많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계좌를 만드는 일, 전화카드를 사용하는 일, 심지어 마켓에서 우산을 사는 것도 힘들어 비가 오는 날 난 하나밖에 없는 우산을 빌려주었다. 그때 아마 감동을 받았는지 나를 very kind 하고 lovely 하다고 주위 사람한테 했다고 한다. 조금은 민망했다. 오늘은 어떤 음식을 먹었고 갈비를 먹었는데 매우 맛있었으며, 낙지를 처음 봤는데 살아 있는 채로 요리하고 먹어서 충격 이었다 라며 음식얘기를 하는 것도 하루의 재미 였다. 형과 매일 한국어 문장 하나씩 배우기를 주고받으며 진지한 얘기도 가끔 하였다.

 

 

 

형은 결혼을 했고 비록 지금 아내는 에디오피아에 있지만 아내를 한국으로 불러 같이 일하며 한국에서 삶의 터전을 꾸미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형에게 당장 필요한건 아내가 올수 있도록 비자를 받는 절차와 200만원 가량의 비행기 값, 그 비행기 값을 벌기위한 파트타임 아르바이트였다. 신혼인지라 더욱이 보고 싶어 하는 아내에 대한 마음이 와 닿아 나는 내가 도와줄 수 있는 한 도와주기로 하였다.

 

출입국관리소가 무엇을 하는 기관인지도 몰랐던 나는 전화도 걸어 비자를 얻는 방법을 알려주고 나름의 그에게 맞는 일거리도 뒤져보았다. 한국어를 하지 못하고 외국인인 탓에 그에게 맞는 파트타임 일자리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현재 형은 아내와 여기서 꾸려나갈 행복을 기대하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나또한 형을 도와주며 보람을 느끼고 아내와 빨리 만나서 한국에서 상처받지 않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길 바란다.

 

 

 

자기 전 외국인과 서로의 문화에 대해 공유하는 경험은 유학을 가지 않는 이상 희귀한 경험이다. 어찌 보면 난 행운아이기도 하다. 내가 평생 가보지도 못할 나라의 사람과 친구가 되게 해주고 내 학교생활을 좋은 추억으로 마무리하게 해준 의관에게도 무척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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