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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학년도 생활수기 당선작 은상 - 유석범
번호 : 63 등록일 : 2012-11-19 조회수 : 2232

 

 

[ 내 친구 피카루 ]

 

 

 

학부생 때부터 이 학교 학생으로 지내며 자취, 하숙, 통학, 동거(남자..), 기숙사(예관 빼고 다 살아봄) 등 모든 주거형태로 살아본 경험으로 기숙사가 제일 저렴하고 편하다. 꼬박꼬박 세끼 차려주고 관리부터 해서 복지시설까지 모든 것이 다 좋다.

 

하지만 기숙사의 가장 큰 묘미는 바로 룸메이트라고 생각한다. 학기마다 달라지는 룸메이트가 어떤 인물일지 설레는 마음은 학창시절 새 학년 새 반에서 어떤 짝이 생길지 기대하는 마음과 같을 것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여태까지 마음 맞고 착실한 룸메 들을 만나서 갈등 없는 시간들을 보내왔다. 그렇게 기숙사 생활을 한지 일년이 지나고 올해 2학기가 시작되던 해에 룸메이트의 자취선언으로 나는 다시 새 룸메이트를 얻게 되었다.

 

 

 

나의 지금까지와는 달랐던 조금은 특별한 룸메이트를 맞이했던 학기가 시작되기 전 일요일 밤. 주말 간 잠깐 집에 들렸다 학교로 돌아오며 방이 아직 비어 있겠지란 생각으로 문을 열려던 찰나, 방 안에서 처음 듣는 언어로 시끌벅쩍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외국어로 두명 이상이 대화하는 소리였다. 나의 새 룸메이트가 외국인이란 사실에 놀라기도 했지만 학기 초부터 친구들을 방에 불러 논다는 생각에 약간 불쾌하기도 하였다.

 

흠 그래도 기에 눌리면 안되지 초장에 이런 건 잘못됐다고 의사표시를 해야 겠다라고 맘을 굳히며 방문을 열자, 이게 왠일... 상상과는 달리 비쩍 마른 흑인 한명이 화상으로 영상통화를 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그는 나를 보며 활짝 웃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헬로우를 외쳤다. 머릿속이 복잡해지며 난 벙찐 표정으로 ...하이라고 답했다.

 

내 한 학기 아니 어쩌면 졸업 전까지 같이 있어야 하는데 의사소통은 어쩌지? 외국인과 같이 생활은 해보고 싶었는데.... 유일하게 쉬는 내 공간인데 불편하겠다... 등등 여러 생각과 만감이 교차했다. 그는 나에 대한 궁금함이 폭발했는지 영어로 매우 긴 문장을 얘기했다. 토익에서나 듣던 그런 문장들을.. 영어에 유독 약한 나는 겸손해진 태도로 리스닝 테스트를 하듣 귀 기울여 한 단어 한 단어를 듣고 초등학생 수준의 답변만을 늘어놓았다. 그리고는 내일 아침수업도 고려하여 “I’m tired, so sorry”라고 하며 침대에 누워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미안한 태도였다.

 

 

 

그날 이후로 나는 연구실에서 칼퇴하던 시절은 사라지고 기숙사가 더 불편한 마음에 일부러 늦게 퇴근하곤 하였다. 그의 이름이 피카루이고 아프리카쪽 에디오피아에서 왔으며 나와 같은 전공이었다는 점, 그의 형은 우리학교 물리학 교수였다는 사실 등등을 알기 전까지는 꽤 긴 시간이 흘렀다. 회피성 대화로 하루하루 짧게 애기했던 것이 다였기 때문이다.

 

내가 퇴근하고 방문을 열면 피카루는 항상 화상통화를 했다. 한국말도 전혀 못하던 그는 이 먼 나라에서 외로움을 버틸 방법은 자국 친구들과의 영상통화 뿐인 것 같았다. 향수의 그리움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약간은 측은해보였다. “그래 이왕 같이 살게 되고 이것도 인연이니 내가 적극적으로 다가가자이런 맘이 들게 한건 그런 외로움에도 날 항상 웃는 얼굴로 반겨준 그의 호의였다.

 

 

 

그 때부터 난 그를 위해 더불어 내 자신도 위해 영어공부에 매진하였다. 국제어 강의를 듣고 영어공부를 하고 숙소에 와서는 네이티브 스피킹이라니... 이건 내가 한국에 사는 건지 미국에 사는 건지도 헷갈릴 정도였다. 그날 배운 영작문을 그에게 말하면 그는 성심성의껏 대답해 줬고 잘 안 되는 의사소통으로 우리는 서로 마음을 열게 되었다. 이렇게 순수하고 착한 형인데 지금까지 퉁명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피카루 형은 한국어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학교생활을 하는 데에 여러 가지로 도움이 많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계좌를 만드는 일, 전화카드를 사용하는 일, 심지어 마켓에서 우산을 사는 것도 힘들어 비가 오는 날 난 하나밖에 없는 우산을 빌려주었다. 그때 아마 감동을 받았는지 나를 very kind 하고 lovely 하다고 주위 사람한테 했다고 한다. 조금은 민망했다. 오늘은 어떤 음식을 먹었고 갈비를 먹었는데 매우 맛있었으며, 낙지를 처음 봤는데 살아 있는 채로 요리하고 먹어서 충격 이었다 라며 음식얘기를 하는 것도 하루의 재미 였다. 형과 매일 한국어 문장 하나씩 배우기를 주고받으며 진지한 얘기도 가끔 하였다.

 

 

 

형은 결혼을 했고 비록 지금 아내는 에디오피아에 있지만 아내를 한국으로 불러 같이 일하며 한국에서 삶의 터전을 꾸미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형에게 당장 필요한건 아내가 올수 있도록 비자를 받는 절차와 200만원 가량의 비행기 값, 그 비행기 값을 벌기위한 파트타임 아르바이트였다. 신혼인지라 더욱이 보고 싶어 하는 아내에 대한 마음이 와 닿아 나는 내가 도와줄 수 있는 한 도와주기로 하였다.

 

출입국관리소가 무엇을 하는 기관인지도 몰랐던 나는 전화도 걸어 비자를 얻는 방법을 알려주고 나름의 그에게 맞는 일거리도 뒤져보았다. 한국어를 하지 못하고 외국인인 탓에 그에게 맞는 파트타임 일자리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현재 형은 아내와 여기서 꾸려나갈 행복을 기대하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나또한 형을 도와주며 보람을 느끼고 아내와 빨리 만나서 한국에서 상처받지 않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길 바란다.

 

 

 

자기 전 외국인과 서로의 문화에 대해 공유하는 경험은 유학을 가지 않는 이상 희귀한 경험이다. 어찌 보면 난 행운아이기도 하다. 내가 평생 가보지도 못할 나라의 사람과 친구가 되게 해주고 내 학교생활을 좋은 추억으로 마무리하게 해준 의관에게도 무척 고맙다

[ 나와는 너무 다른 룸메이트 ]

 

기숙사에서 거주하는 것은 이번이 다섯 번째이다. 집이 지방에 있는 학생들이 대부분 그러하겠지만, 기숙사 아니면 하숙의 선택지만이 주어지게 된다. 신입생들이야 두말하면 잔소리일까? 아주 독립심 넘쳐서 미리 교외의 하숙집을 조사하고 원하는 집을 찾는 학생은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다. 나도 그러한 경우에 해당되게 되었다. 그 덕택에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같이 지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만남은 기숙사에 대한 생각을 많이 바꾸었다. 전에는 기숙사에 대한 막연한 상상은 유흥과 낭만이 펼쳐지는 파라다이스였다. 새벽까지 게임을 즐기거나, 방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 같이 놀고 그러한 상상을 하고는 했었다. 미국 드라마에서 나오는 기숙사처럼 극단적으로 퇴폐적이지는 않겠지만, 어느 정도는 그렇지 않을까하고 말이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나의 룸메이트들은 지금도 그러하고, 아주 자기 절제가 잘되는 사람들이었다. 1학년 때에는 조금 실망스럽고 이러한 분위기가 많이 답답했었는데, 지금은 이러한 것이 낫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면, 이렇게 질서가 유지되는 곳에서 개개인의 여러 권리도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거주하는 한은 기숙사는 이다. 집에서 편하게 있는 것은 개개인마다 다르지만, 최소한의 안락함은 안정할 수 있는 장소에서 온다. 옆에서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놓고, 놀고 있는 데 안정할 수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기숙사가 처럼 쉴 수 있는 곳이 되기 위해서는 사감이나 직원 분들의 노력뿐만 아니라 사생 모두의 타인의 권리를 배려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모두가 그러했겠지만, 내가 다른 이들에게 주었던 불편함을 반성하고, 좀 더 이렇게 했으면 나았을 것을 하는 항목을 적어보고 싶다. ‘현자는 역사에서 배우고, 우자(愚者)는 경험에서 배운다고 한다.’는 말이 있다. 앞으로 입사하는 신입생들은 미리미리 대비하여, 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역시 제일 기억에 남는 사람은 첫 학기 때의 내 첫 룸메이트였다. 3년이나 지나서 이름도 잘 기억이 안 나는 데에도 여전히 둘 사이의 문제에 대해 기억이 난다. 나보다 2살이나 더 먹고 군대까지 다녀온 형이었다. 당시에 나는 신입생으로써 조금은 주눅이 들었었는데, 형이 이외로 잘 대해 주셨기에 생활에 불편함은 없었다. 그런데 엉뚱한 데서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내가 코를 고는 문제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형이 수면에 있어서 아주 민감함을 자랑했었다. 얼마나 예민했던지 자다가 화장실만 갔다 와도 깨는 수준이었는데, 나의 상한이 보이지 않는 코골이에 형은 신경쇠약으로 쓰러질 지경이었다. 한번은 형이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밤에 크게 화를 냈다. 당시에 코골이가 그렇게 남에게 고통을 줄지는 몰라서, 형을 속으로 엄청 원망하고는 했다. 그리고 방학 중에는 부모님께 졸라서 코골이 수술을 받았다. 이러한 문제로 또 얼굴을 붉히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군대를 가서 느낀 것이었는데, 사람은 잠 문제로 주먹질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코골이 수술을 해서 소리가 많이 줄었는데도, 선임들의 갈굼을 일점사 당할 수 있었는데, 그때 형의 배려에 대해 실감했다. 형이 정말 양반이었던 거구나. 지금은 너무 죄송하다.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다면 술 한잔 하면서 사과하고 싶다. 여기까지보면 나의 특수한 문제인 것 같지만,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수면문제이다. LC친구 중에 기숙사에 사는 친구가 있는데, 항상 수면 문제를 호소하고는 한다. 스탠드의 빛이 얼마나 센지, 눈을 감아도 빛이 세어 들어올 지경이라고 한다. 나도 자는 사람과는 다른 사정이 있어 늦게까지 자지 않을 수는 있어도, 자는 사람이 그것을 이해해 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폭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당장 기숙사 위반사항 중에 하나를 들어보고 싶다. 24:00이후 룸메이트의 동의없이 컴퓨터나 전등을 사용하는 행위는 벌점 4점에 해당한다. 벌점까지 줄 정도로 문제가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사생 모두가 한번쯤은 생각해 볼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수면문제와 같은 룸메이트간의 문제를 해소하고 서로에게 방을 편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룸메이트간의 대화이지 않을까? 사실 취미도 관심사도, 소속된 학과도, 생활 패턴도 다른 둘이 특별한 계기 없이 서로 마음 터놓고 말하기도 어렵다. 1학년 때의 룸메이트들도 그러했다. 1학년 때에는 형들이 워낙 바빴다. 당장 닥친 인턴이랴, 학과 과제하랴, 준비할 것은 많았고, 방에 있는 시간은 적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기도 빠듯하고 잠도 많이 자는 나에게 있어서 얼굴을 마주하기도 매우 어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1학년에 있어서 기숙사는 트러블의 연속이었다. 말을 적게 하니 무엇이 문제인지도 진단하기 어려웠고, 위의 문제도 발생하곤 했다. 그러한 문제에서 벗어난 것은 전 학기부터였다. 전 학기 때에는 옆방 형과 많은 얘기를 하려고 노력하고 그럴 수 있었다. 사실 2학년 1학기에도 내 룸메이트들은 항상 시간에 ?i기는 사람들이었는데, 방도 따로 사용하니, 시간을 내어서 얘기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그런데에도 불구하고 153-B방의 형은 자주 시간을 내어주었다. 그렇기에 그 형에게는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같이 사용하는 화장실의 휴지 문제, 청소 문제, 야간 샤워로 인한 소음 문제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주로 식사를 하면서 일상적인 주제를 많이 이야기 할 수 있어 친해 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편한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마음을 터놓는 데에도 꽤 어려움이 있는 데, 이러한 해결 방법이 있다는 점이 아주 좋았다. 서로 시간 내기 어려운 신입생에게 한가지 추천하고 싶다. 같이 밥을 먹으라고...... LC나 동아리 친구랑 같이 먹는 것도 좋다. 하지만 룸메이트하고 밥을 먹는 것도 중요한 것이지 않을까? 그래야 같이 얼굴을 바라보며 이야기할 시간도 생긴다.

 

지금 현재 지관에서 지내면서 나의 룸메이트하고도 친하게 지내보고 싶다. 이전에도 몇 번씩 이야기를 해보곤 했는데, 타자치는 소리가 불편하다고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내가 문제를 해결해 주질 못해서 많이 미안하다. 반면 나는 잠에 예민한 처지가 되어서, 행여나 불편함을 드러내고는 있다. 사실 몇 번은 폭발해서 엉뚱한 데에 화풀이를 하고 있는 걸 보면 아직은 불편한 상태인 것 같다. 착실하게 생활하는 것은 둘 다 비슷한 것 같은데, 이렇게나 사람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 참 묘한 데 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여러번 이야기 하고 서로간의 생활을 조정하다보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름은 본인을 존중하여 익명으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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