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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학년도 생활수기 당선작 동상 - 이현용
번호 : 29 등록일 : 2011-12-14 조회수 : 2244

 

[ 새로운 터전 ]

 

처음에는 새로운 환경에 들어서게 되면, 언제나 두려움을 갖게 된다. 자신이 잘 모르고 있던 곳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걱정이 자리 잡고 있다. 과연, 이 새로운 환경에서 스스로 잘 해 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에서부터 인간관계까지 어찌 헤쳐 나가야 할지까지 고민하게 된다. 나는 1학년 때 여태까지 기숙사생활을 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마치 수련회처럼 억압된 환경으로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필요 없었던 걱정거리들이다. 기숙사 생활은 별천지였다.

룸메이트가 누구지 알고 난 뒤, 방을 배정받고 처음으로 방에 들어왔을 때, 방이 참 낯설었다. 점차 나의 짐을 쌓아 올리고 정리하면서 점점 나의 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나의 보금자리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 사이에 처음에 룸메이트에 대한 두려움은 작아지고, 룸메이트가 누굴까 하는 궁금증은 커지면서. 새로운 룸메이트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룸메이트는 나의 선배였는데, 선배에 대한 예의가 있고, 인생의 형이라서 어찌 해할지 몰랐지만, 우리의 집에 같이 사는 가족이자 손님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의 룸메이트 또한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와중에 룸메이트가 들어왔다. 룸메이트는 가족과 같이 함께 찾아왔다. 서로 머쓱한 인사를 나누면서 어색했다. 혼란스러웠다. 어려웠다. 힘들었다. 하지만, 룸메이트의 한마디가 얼어버린 나의 몸을 바로 녹여버렸다. ‘앞으로 가족처럼 잘 부탁해요.’ 지금까지 머릿속으로 되뇌던 그런 룸메이트였다. 신의 장난이었는지 모를 노릇이었지만, 룸메이트는 나와 완전히 잘 맞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기숙사생활이 정말 편안하고 즐거울 것 같았다 마치 바로 나의 집처럼 말이다. 이전의 걱정은 괜한 나 혼자만의 착각으로 사라졌다.

나는 우리 기숙사의 가장 좋은 문화는 입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룸메이틀 배정할 그 당시에는 왜 룸메이트를 동갑이다 동학년으로 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 들고, 그렇게 배정하지 않은 기숙사측에 불평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나의 룸메이트는 처음에 얼마 있지 않아 입방식을 하자고 했다. 입방식이란 용어를 처음을 들었던 나는 룸메이트에게 되물어 볼 수밖에 없었다. “입방식이 어떤 건가요?” 그러면서 입방식 몰라? 나랑 밥 먹으러 가자. 언제 시간 비워둬라고 했다. 그 당시 입방식이란 것은 군대의 신고식 같은 거라고 느껴져서 두려웠지만, 그렇지 않을 거라는 믿음으로 그 때 시간을 비워두고 룸메이트와 약속을 잡았다. 한편의 걱정거리를 다시 안고 룸메이트를 따라 나섰지만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음식점이었다. 룸메이트가 말하길 먹고 싶은 거 먹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깜짝 놀랐다. 입방식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다른 무엇이 숨겨져 있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을 많이 품었지만, 이것 도한 쓸모없는 잡념이었다. 룸메이트가 말하기를 입방식은 쉽게 다가오지 못하는 후배에게 선배가 밥을 사주면서 먼저 다가가 앞으로 잘 지내자는 의미 하에서 서로 만난 것을 축하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것을 룸메이트가 생각한 것이냐고 물으니, 룸메이트는 자신도 선배에게 배운 것이라고 했다. 정말 나는 이 문화가 마음에 들었다.

우리 봉룡학사의 풍습이라고 할 정도로 좋은 문화였다. 나는 3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아도 이러한 풍습은 봉룡학사에 존재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 계기로 나의 첫 번째 룸메이트와 엄청나게 절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우리는 매우 절친한 형과 동생처럼 아주 사이가 좋았다. 이제는 없어지고 추억거리로 남았지만, 예전에 지관 기숙사에 있었던 라면 자판이가 바로 지관을 대표하는 멋진 자랑거리였다. 그 라면으로 룸메이트와 우정을 나누곤 했다. 지금은 기숙사에 어머니가 끓여주시는 맛있는 라면, 쪄 주시는 만두, 손수 만드신 와플을 먹을 수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없었고, 라면으로 허기를 채울 수밖에 없었다. 라면 지관 기숙사생의 특권이나 마찬가지였다. 열심히 룸메이트와 공부하고 내려와서 쪼그라든 배를 채우기 위해서 함께 지하로 내려와 라면을 먹고 했는데, 그것 또한 정말 잊을 수 없는 룸메이트와 추억이었다. 단지 라면을 먹는 것뿐이었지만, 한방에서 같이 살면서, 같이 공부하면서 같이 자면서, 같이 느끼는 룸메이트와 먹는 라면은 정말 특별했다. 사생회실에서 농구공 축구공 배드민턴 등을 빌릴 수 있었는데, 룸메이트와 나는 탁구를 좋아해서 서로가 잘한다는 자랑 하에서 탁구실력을 뽐내곤 그랬다. 뿐만 아니라 성균관대 대운동장이나 학교 앞 호수에서 같이 뛰면서 운동도 같이 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나 친구와 추억을 얻기 힘들었던 대학교에서 기숙사 룸메이트를 만나서, 다시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얻을 수 있었다.

룸메이트는 정말 가족과 같은 존재였다. 먼 창원지방에서 올라온 나는 친구를 많이 사귀지 못해 거의 혼자 지내다시피 기숙사에서 지냈는데, 한 번 엄청 앓은 적이 있었다. 밥을 먹어도 몸에서 받지 않아서, 밥 한 톨도 못 먹곤 그랬다. 몸을 거의 가누지도 못했는데 며칠 동안 룸메이트가 간병을 해주었다고 과언이 아니었다. 죽집에서 죽을 사다가 먹으라고 주기도 했었다. 타지에 와서 몸이 아픈 서러움이 룸메이트 덕분에 극복할 수 있었고, 나의 가족이라고 느낄 만큼 정말로 감사하고 고마웠다.

룸메이트는 의전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다. 옆에서 가까지 지켜보고 있었던 나는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 밤낮으로 인터넷 강의를 보고 도서관을 오가며 열심히 학구열을 불태우는 그 때의 룸메이트에게서 배울 점이 많았다. 학교 학과 수업 외에도 의전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다른 과목들도 덩달아서 따로 시간을 내어서 공부해야 했는데, 룸메이트는 자기 관리가 철저했다. 그의 책상 위의 스탠드는 꺼질 줄 몰랐다. 나는 그로부터 롤모델을 세울 수 있었다. 자려고 누우려고 해도 눕지 않고 룸메이트를 따라 공부를 시작한 적도 많았다. 그가 뿜어내는 분위기는 정말로 대단했다. 그 당시 1학년에게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고등학교에서 해방되면 그것으로 끝인 줄 알았던 철없는 1학년에게는 정말로 학업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1학년 때 처음으로 보고 배울 수 있었던 그 룸메이트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기숙사에서 새로운 선후배로 룸메이트를 지어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숙사에서 새로운 유대 관계를 통해 나의 시야는 한층 더 밝아지고 미래를 향해 한걸음 나아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입사하게 될 새내기 후배들에게 두려움을 갖지 말고 기숙사에 입사해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기숙사는 잠만 자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배움의 터전이라는 것을 와서 몸으로 느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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