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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학년도 생활수기 응모작 - 정은영
번호 : 134 등록일 : 2012-11-23 조회수 : 3541

예관의 맏언니

 

새벽 4. 대학원생으로서 다음날 9시 출근을 위해 한참 단잠에 빠져 있을 시간.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한통 걸려온다.

지금 화장실에 누군가 쓰러져 있어요.”

? 지금 바로 갈게요.”

자고 있는 룸메이트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속삭이듯 얘기하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방을 빠져나가 화장실로 달려간다. 누군가의 다리 한쪽이 화장실 문 밖으로 나와 있다. 처음 발견한 학생은 놀란 마음을 추스르지도 못하고 있다. 옆 칸 변기를 밟고 올라서서 벽 너머로 내려다보니 학생 한명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학생! 눈 떠봐요! 정신 차려보세요!”

학생의 얼굴을 보니 1시에 출입문 통제 시간에 술에 취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들어온 낯이 익은 얼굴이다. 분명히 방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는데, 잠들지 않고 다시 나와 또다시 복도와 화장실을 배회했나 보다.

몇 번을 불러보니 다행히 정신을 조금 차린 듯 꼼지락거린다.

 

~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신고를 한 학생들에게 술에 취해 잠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제부터 또 다른 걱정이 시작된다. 오늘 같은 이 일이 처음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겁부터 난다. 이 학생이 정신을 차리고 화장실 문부터 열어주었으면 좋겠다. 가장 큰 문제는 화장실 문이 밖에서는 아무리해도 열리지 않는다는 것. 옆 칸에서 긴 막대기로 열어보려 해도, 잠금장치를 밖에서 부수려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쓰러져 있던 학생이 정신을 차리게 하여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오는 일이 가장 빠르고 쉬운 일이다. 다행히 오늘 밤 화장실에서 단잠을 잔 학생은 자기 몸을 추스를 정도는 되었나보다. 문을 열고 나와서 횡설수설하더니 묻는 말에도 제법 대답을 해서 방까지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어 무사히 상황 종료다.

 

내가 예관 조교가 된지 오래 되진 않았지만, 예관 여학생들 중에는 자신이 이기지 못할 만큼 술을 마시고 들어와 결국 구급차까지 불러 응급실까지 실어 보낸 경우가 한 학기에 한두 번은 있었다. 남학생들의 경우 시끄럽게 난동을 부리거나 싸움이 붙어 문제가 생긴다고 하는데, 여학생들의 경우는 오늘처럼 자기 몸을 못 가누다가 아무데서나 토하거나 잠들어 문제가 발생한다. 온몸에 토사물을 뒤집어쓴 채로 있으면 구급차에 태워주지 않기 때문에, 구급차가 오기 전까지 축 늘어진 학생을 닦아주고 옷을 대충 갈아입히는 일을 해야 한다. 이 일도 몇 차례 하다 보니 이젠 전문가 수준이 되었다. 굉장히 씁쓸한 전문직(?)이다.

 

게다가 1~2개월에 한 번씩 각 방을 점검하는 일에도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진다. 이불이 켜켜이 쌓여있는 침대에 방수시트를 씌웠는지 확인하는 일, 매의 눈으로 비허용 전자제품을 찾아내는 일이 그러하다. 벌점을 주는 일이 마음이 쓰이기도 하고, 개도 차원에서 경고를 주거나 좋게 이야기를 해도 기분 나쁘게만 받아들이는 학생들이 있어 힘이 들다. 이렇게 150여개의 방을 혼자서 점검하다보면 진이 빠진다. 그나마 방을 너무나도 깨끗하게 정리 정돈해 놓고 향기까지 나게 해놓고 쓰는 있어 감탄이 나오는 경우, 예쁘고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주고 수고한다는 인사말까지 건네주는 학생들이 있어 조금 힘이 난다.

 

방 점검이나, 위급사항 출동(?)을 마치고 축 늘어져 내 방에 들어오면 룸메이트가 고생했다는 위로를 해준다. 나보다 6살이나 어린 룸메이트가 친구 같기도 하고, 친동생처럼 느껴지곤 한다. 이런 룸메이트 역시 생활지도조교에 대한 회의감이 들지 않고 지낼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인 것 같다. 방에 칸막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생활이 거의 다 노출되는 이런 환경에서 좋은 룸메이트를 만나 이렇게 지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조교로서 각 방을 점검하다보면 그렇지 않은 방이 많아 깜짝 놀라곤 한다. 서로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지내고, 인사 한 번도 나누지 않고 지내는 경우도 많았다. 지극히 개인생활을 하다 보니, 룸메이트에게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쉽게 혹은 좋게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공동체 생활에서 얼마든지 그럴 수 있기는 하지만, 조금만 더 마음을 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한학기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에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는데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4년간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기숙사에 조교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낼 정도로 조용하고 성실하게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조교만 보면 눈치를 보고 피해 다니는 학생들도 있다. 누구에게나 모든 규칙을 지키는 일이 귀찮을 수 있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는데 왜 이렇게 반응이 다를까? 마음가짐이 다르기 때문일 것 같다. 조교가 벌점을 주기 위한 사람이 아니라 기숙사라는 공동체 생활을 함께 잘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는데, 결국 벌점을 받고 크게 항의를 하고, 나와 안 좋은 인상을 주고받게 되는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나를 마주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것이다. 조교인 나도 그 학생을 마주칠 때면 그렇게 느끼는데 당연하다.

 

조교로서 가끔은 엄마의 잔소리 같은 말들을 사생들에게 해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일, 사소한 일이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을 하라고 각 층에 내 개인 연락처를 공개했다. 그래서 간간히 사소한 부탁을 받는 경우도 있다. 벌레를 잡아달라는 학생, 혼자서 도저히 침대시트를 씌우는 일을 못하겠다며 도와달라는 학생도 있고, 밤늦은 시간 소화제를 찾는 학생에게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소화제를 나누어 주기도 했다. 귀찮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일이 있을 때 나를 찾아 도움을 요청하고, 고민을 상담했다는 점이, 나를 정말 맏언니처럼 생각해 준 것 같아 고맙고, 오히려 내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 뿌듯하기도 하다. 내가 이곳에서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해야 할 일을 잘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이런 사소한 일들로라도 얼굴을 마주한 학생들은 다시 복도에서 마주치면 인사도 나누게 되어 반갑기도 하다.

 

앞으로 더 많은 학생들과 복도에서 눈인사를 할 수 있고, 서로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언니동생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이 학교를 떠나는 날까지 예관의 학생들에겐,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달려오는 예관의 맏언니로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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