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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학년도 생활수기 응모작 - 박지현
번호 : 54 등록일 : 2011-12-14 조회수 : 2573

            [ 예관 아가씨 ]

 

여느 평범한 대학원생의 하교길은 언제나 어둑하기 마련이다. 그 날은 여느 날보다는 계획했던 실험이 잘 진행되지 않아, 마지못해 실험실에 붙잡혔다가 시계가 까물까물 3시를 향해 가고 있을 때쯤 의관 기숙사의 문턱을 넘어 들어갔다. 의관 기숙사의 여자 기숙사생은 도어락으로 따로 구분된 구역인 2층을 사용하게 되어 있으니, 그날도 익숙한 번호를 누르고 잠금 해제하여 들어가는데, 살짝 이상한 냄새가 나는 거였다. 3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으니 복도에 인적이 드문데, 평소 기숙사 복도에 떠다니는 가벼운 샴푸 냄새나 라면(!) 냄새가 아닌 무언가 한차례 가볍게 발효된 듯한 걸쭉한 냄새에, 죄송한 말씀이지만 고향의 향수를 그리다 못한 외국인 사생분이 다른 사생들의 피해(?)를 줄이고자 새벽에 요리 솜씨 좀 발휘하시는 줄 알았다(의관은 본래 외국인 전용 기숙사이기도 했다). 의관은 두 개의 긴 복도가 가운데 화장실과 샤워실, 세면실에 달린 두 개의 팔처럼 붙어 있는 단순한 구조인데, 불투명한 유리문을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에 긴 복도가 하나 있고, 들어선 방향 그대로 샤워실과 세면실을 지나면 왼쪽에 다시 같은 길이의 복도가 나타난다. 그리고 두번째 복도로 돌아선 순간 나는 그 오묘하고도 얕은 발효의 내음의 정체가 무엇인지 사실 알고 싶지도 않았는데 알게 될 수밖에 없었다.

학부생 때 기숙사에서 살 때는 사실, 난 매우 모범적인 학부생(되돌아갈 수 있다면 더 놀 테야)이었기 때문에 10시 넘어서 기숙사에 들어오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그땐 몰라도 좋았을 일을 새벽별 보는 요즘엔 특히 개강 및 방학시작시즌에 많이 보게 되는데…

쓰러져 있는 자태는 고우나 풍기는 내음이 심상찮고, 가지런히 입은 귀한 집 딸내미인데 누울 곳을 잘못 짚은 듯하다. 평소 술자리를 전혀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처음 당하는 상황이었다. 방금 누웠는지는 몰라도 본 사람이 한명도 없을 수가… 있는 시간이었으니까. 여자애들이 피부에 신경쓰는지 몰라도, 또 잠과 피부의 관계가 얼마나 명확한지도 몰라도, 다들 한두 시 전에 다 씻고 들어가긴 하니 말이다. 어쨌든 나는 그 여아를 앞에 두고, 또 난생 처음 여기서 책임을 느껴야 하나 모르는 척 튈까 말까 하는 고민을 해야하는 상황에 당면해버렸다.

기억이야 잘 나진 않지만 유딩때부터 배워왔던 ‘남의 물건 허락없이 만지지 말기’를 평소 몸소 실천해왔던 나이기에, 생각보다 고민의 시간은 길었다. 그렇다고 마냥 그 옆에 쭈그려 앉아 있을 수는 없어서, 이거 누가 보면 나 도둑으로 몰리나? 가방여는데 깨면 어떡하지하고 걱정을 하며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유레카! 다행히 곧 지갑을 손에 넣을 수 있었고, 신분증을 끼워두는 곳에 사생증도 함께 끼워져 있었다. 그리고 문제는 조금 더 복잡해졌다. 여기 요로코롬 새초롬하니 남이 가방 뒤적거리는 것도 모르고 찬데 주무시고 계시는 이는 예관 사생이었던 것이었다…

도둑으로 몰릴 것을 반쯤(완전히 하진 않았다) 각오하고 뒤진 가방이었는데, 그래서 호실을 알아내어 룸메를 깨우든지 해서 방에 집어넣으려던 나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3시가 넘은 이 시각에, 당연히 예관은 학부생만 살고 있으니 통금이 엄격한 건물이라 쇠사슬로 단단히 잠겨 있을 거고… 이쯤 되니 이 차디찬 바닥에 자도록 내버려두고 싶은 마음까지 은근슬쩍 고개를 드는 것이었다. 뭐 하루쯤 잔다고 입이 돌아가겠어? 젊을 땐 다 한번씩 해보는 거지 뭐. 부끄러워 봐야 다음엔 주량 조절도 하고, 안 그래? 사생증을 도로 지갑에 끼워 넣고 지갑을 가방에 넣어두고, 나는 일어서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오던 길을 되돌아가 계단을 내려가서, 이 꼭두새벽에 얼굴도 모르는 이름도 모르는 여자아이를 위해 안면몰수하고 경비실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아주 흡족하게 꿈나라를 항해하고 계실 경비아저씨께 정말 너무너무 죄송했지만, 저기 누워서 자고 있는 애도 엄마가 있을 거고, 그 엄마는 분명 귀한 딸이 따듯한 침대에서 편하게 자고 있을 거라고 생각할 거였다. 우리 엄마가 매번 저 수화기 너머에서 자신의 잠자리보다 내 잠자리를 걱정하듯이, 매번 똑같고 별반 다를 것 없는 것인데도 밥이니 잠자리니 챙기는 것처럼 분명 저 아이의 엄마도 그렇게 생각하실 텐데.

후에 들은 일이지만 같은 실험실의 선배가 경비실의 옆방인지, 옆옆방인지 살고 있었더란다. 그리고 새벽에 여자 목소리가 복도에서 들려서 자다 깼다고 했었다. 그게 바로 나였다. 불러도 두들겨도 안 깨서 전화했더니 겨우 잠에서 깨신 의관 경비아저씨… 종종 겪으시는 일이겠지만 매번 귀찮고 힘드실 텐데 내색 없이 근무복으로 싹 갈아 입으시고 나오시는 모습이 어쩜 그렇게 고맙고 반가웠는지, 이 자리를 통해서 사실 그때 꼭 감사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아무튼 상황을 보시고 내가 다시 꺼내든 사생증을 보고 예관 아가씨가 맞다고 판단한 경비아저씨는 생활조교를 깨우시고(조교님도 고생하셨어요 꼭두새벽에), 깬 생활조교가 다시 상황 확인을 하곤 나보고 이제 괜찮다고 예관으로 돌려보낼 거라고 예관 조교를 깨웠다. 돌이켜보니 난 훈훈한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여러 명 잠을 설치게 만들긴 했다. 사실 내가 한 거라기보단 그 여자아이가 만든 일이었지만.

그 아이의 마지막 모습은 보지 못했다. 이름도 일부러 기억에서 지웠다(정말로). 봉룡학사 생활수기(상품)가 내 기억을 끄집어내게 만들긴 했지만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른다. 기억나는 건 머리가 좀 길었다는 것과 복도의 그 쿰쿰한 냄새 정도? 그 예관 아가씨, 곧있으면 시험기간이고 시험이 끝나면 한잔 할 텐데 이번에는 적당히 적당히 자신의 침대로 돌아가길 바란다. 또 차가운데 누워 있지 말고. 이제 안 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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