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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학년도 생활수기 응모작 - 김준희
번호 : 32 등록일 : 2011-12-14 조회수 : 2161

        [ 휴학과 복학, 그리고 봉룡학사 ]

 

“아... 머릿속에 뭐가 있긴 있네요...”

작년 월드컵 열기가 서서히 사그라지던 무렵, 앞이 잘 안보여서 찾았던 안과에서 머리 MRI 검사를 받아보라고 하였고, 그 검사 결과가 나오던 날, 담당 의사분의 첫 마디였다. 저 말을 듣는 순간, 그 의미를 재빨리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검사 결과를 보여주는 모니터 화면에는 메디컬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흑백의 두뇌 사진이 띄워져 있었고,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뇌 정중앙에는 주변과 확연히 차이나는 색깔의... 너무나도 큰 회백색의 덩어리가 있었다. ‘아... 뭐가 잘못되긴 했구나.’의학 지식이 전혀 없는 내가 봐도 바로 직감할 수 있었고, 잠시 후 받은 최종 진단 확인서에는 ‘확진:뇌종양’이라는 문구가 유독 강조되어 보였다.

지난 몇 년간의 대학생활의 기억과 앞날에 대한 막막함이 몰려왔다. 내가 살아오면서 얼마나 잘못 살았기에... 얼마나 형편없이 살았기에 이런 병이 생기나 싶었고, 개략적으로 계획해 놨던 향후 3~4년간의 계획이 무기한 연기되겠구나 싶었다.

뇌종양 진단 다음 가장 먼저 한 일은 기숙사에서 내 짐을 빼는 일이었다. 일단 뇌종양이 확진된 상황이었고, 그 정도가 위중한 상태였으므로 외과적 수술이 확실히 필요했기 때문이다. 너무 경황이 없던터라 같은방에 살던 룸메이트한테 전후 사정도 말 못하고 급하게 짐을 실었다. 기숙사에서 나오면서 1년치 휴학계도 같이 제출했다.

그 후로 열흘 후 8시간 반동안 수술을 받았고, 수술 후 약 두달가량 입원 재활치료도 받았다. 그렇게 5개월 정도 치료를 받고, 마침내 지난 12월 더 이상의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의사선생님의 소견을 받을 수 있었다.

재활치료가 끝났다고는 하지만 원래의 생활, 대학원 연구실 생활로 바로 복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나머지 6개월간 건강을 위한 운동과 대학원졸업에 필요한 영어성적을 만들었다. 그렇게 1년이란 휴학은 주마등처럼 스쳐갔고, 지난 8월 말, 일년만에 성균관대학교 봉룡학사로 돌아올 수 있었다. 복학을 준비하면서 다시 기숙사생활을 해야하는지, 아니면 주변에 방을 하나 구해야하는지 고민이 많았다. 사실 수술이 아주 성공적이어서 추가적인 치료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치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지만, 이미 큰 수술을 받았던터라 걱정이 안될 수가 없었다. 며칠간의 고민 끝에 그냥 기숙사에서 다시 연구실 생활을 시작하기로 결정하였다. 다만 그동안 살아왔던 의관이 아닌 신관으로 신청을 했다. 비교적 최근에 완공이 된 건물이고, 각종 편의시설도 한곳에 모두 있어서 좀 더 마음편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9월 기숙사 입사, 지난해 기숙사 생활 물품을 다시 챙겨서 새롭게 학교생활을 준비했다.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고 맞는 첫 학기라서 부모님께서 걱정이 앞서셨는지 이왕이면 개인공간이 보장되는 기숙사에 들어가라고 하셨고, 고민 끝에 신관 4인4실 방으로 입사하였다. 사실 학교가 집에서 그리 먼 거리는 아니어서 주말마다 집으로 돌아가긴 하지만, 매일같이 왕복 2시간이 넘는 통학거리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들어서 군 제대 후 계속 기숙사 생활을 해왔다.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새로운 기숙사는 좋았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개인 공간을 갖을 수 있다는 것. 사실 2인실을 사용해도 무방하지만 잘 때 예민한 나에게 각방의 매력은 뿌리치기 힘들었다.

복학, 기숙사 입사 이후 처음 약 한달정도는 학교생활에 다시 적응하기에 만전을 기했다. 몸도 충분히 회복했고, 다시 연구생활을 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준비됐지만, 직접 생활을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한 복학 첫 학기. 한 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딱히 불편한 점이나 마음에 안드는 점은 찾기 힘들었다. 사실 같은 방을 사용한다고는 하지만 나머지 3명의 얼굴을 보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각자 주로 생활하는 시간도 다를 뿐만 아니라, 일과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는 시간도 모두 달랐다. 또 방으로 돌아와서 모두 각자의 방에 들어가므로 아침에 샤워실 앞에서 잠시 마주치는 시간대를 제외하고는 만나기 힘들었다.

사실 이런 생활환경에서는 그렇게 생활하는 것이 오히려 편할 수 있다. 4명이 모두 같은 방을 사용하지만, 각자의 개인공간이 따로 보장되므로, 생활하는데 부딪힐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꽤 오랫동안 기숙사 생활을 해봤지만, 이렇게 만족하면서 지낸적이 없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기숙사 생활 중 한가지 불만이 있다면, 얼굴을 맞대지 않고 사는 것에서 오는 각박함이다. 같은 방을 사용한다고는 하지만 방이 4개로 나눠져 있고, 각자 방에 들어가 있다보니 서로 얼굴도 모르고... 약간 삭막한 동침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우려하던 일이 터졌다.

너무나 피곤해서 늦잠을 잤던 어느날 오전, 아침을 거르고 느그적느그적 방문을 열고 샤워를 하러 나가고 있었다. 순간 화들짝 놀라는 룸메이트 한명을 보았지만, 너무 잠에 취해서 별달리 관심을 갖지 않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놀랐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샤워를 끝내고, 필요한 책과 필기구를 챙기고,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연구실에서 근무를 한 후 저녁식사를 하기 전 잠시 방에 들렸다. 마침 시간도 좀 있던 터라, 방청소를 하고 세면대에 물을 틀고 얼굴에 비누칠을 막 마쳤는데... 세면대의 물이 바닥으로 콸콸 쏟아지는 것이었다. 얼굴은 비누칠을 해놔서 눈도 못 뜨고, 바로 옆 샤워실의 수도꼭지도 때마침 물이 잘 안나오는 것이었다. 졸졸 흐르는 물과 수건으로 대충 얼굴을 닦은 다음 다시 세면대로 돌아가 상황수습을 차근차근했다. 무슨일인지 알 수 없었지만 세면대 개수구를 막아주는 마개가 고장나있었다. 순간 그날 오전에 마주쳤던 룸메이트가 떠올랐고, 나를 마주치는 순간 화들짝 놀랐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굳이 수리 신청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10~15분 정도 혼자 끙끙대면서 세면대를 고쳤다. 그리고 나서 혼자 식식거리며 누군지 꼭 잡아야겠다고 분풀이를 했다.

내가 원치 않은 자진 봉사(?)를 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세면대를 끌어안고 10분 넘게 고군분투를 해서 그런 것인지, 그날 잠을 잘 때까지 분한 마음을 삭일 수 없었다. 물론, 그렇게 하루, 이틀 유난 떠는 것으로 그 해프닝은 서서히 잊혀졌다.

그렇게 웃고 넘길만한 일이었지만, 같은 학교, 같은 건물에서 생활하면서 자신이 저질러 놓은 일을 무책임하게 모른척한다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한편으로는 각방이 나뉘어져있는 특성상 그러한 책임감이 약해질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라는 생각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2011년 2학기 대학원 생활도 어느덧 막바지에 다다랐다. 작년, 올해. 나에게는 너무나도 큰 일이 있었기에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기억 속, 성균관대학교 기숙사에 대한 기억 또한 남아있을 것이다. 작년 휴학할 때 미처 인사하지 못했던 룸메이트(물론 복학 후 다시 만나 전후 사정을 다 설명했지만...), 기숙사 중도 퇴사를 서류를 접수받고 그 이유를 듣고는 크게 놀라던 행정직원분, 그리고 항상 상냥하게 인사하시던 의관 매점 아주머니... 이렇게 복학하고 나서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나니 지난 1년이 언제 지나갔나 싶기도 하다.

 

앞으로 지난 1년 전보다 더 힘든 일들이 많겠지만, 그때마다 지금의 학교생활, 연구실 생활... 그리고 기숙사생활을 떠올리면 포기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앞으로 남은 학교생활도 후에 후회하지 않도록 매사에 최선을 다하며 생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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