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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학년도 생활수기 응모작 - 서영진
번호 : 30 등록일 : 2011-12-14 조회수 : 2402

[ 同伴者 ]

 

“아, 안녕하세요”

2006년 3월 3일, 성균관대학교 06학번들의 입학식이 있는 날이었다. 내가 아버지와 함께 기숙사 방을 들어서면서 룸메이트에게 건넨 첫 마디였다. 늘상 기숙사 방을 옮길 때마다 하는 말이겠지만, 그 때 당시 이 한마디에는 정말 많은 내면의 심경이 복잡하게 들어있었다. 그때 당시 룸메이트는 00학번 화학과전공의 형이었고, 재수를 했던 나보다는 5살이나 많았다. 그 첫인사와 함께 방에 짐을 들여놓으면서 내 대학생활과 함께 타지에서의 기숙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나의 집은 대전이다. 자취나 하숙에 관해, 생활에 대한 걱정 반 그리고 경제적 측면에 대한 걱정 반의 부모님은 나에게 기숙사를 들어갈 것을 권하셨고, 나 또한 쉽사리 그에 수긍하여 기숙사에 입사해 어느덧 군대 복무시절과 휴학 시기를 제외하고 지관에서만 3년을 살고 있다. 사실 나는 새내기 시절 기숙사생활이 처음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3년을 기숙사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물론 주말에는 항상 의무적으로 집에 가야하는 반쪽짜리 기숙사 생활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때부터 나는 실질적으로 집에서 떨어져나와 독립된 생활을 하게된 격이었다. 때문에 기숙사 룸메이트와는 잘 지낼 수 있을지라든지, 밥은 입맛에 맞을지, 타향살이에 마음 고생을 하지 않을지 같은 걱정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첫 룸메이트는 고향이 제주도인 나보다 5살이나 많은 형이었다. 참고로 얘기하면 그때 당시는 신관이 건축되기 이전이라 기숙사는 경기·수도권에 거주지를 두고 있는 학생은 입사가 제한되었던 시절이었다. 형은 이제 새내기인 나에게 이것저것 조언도 해주고, 가끔 함께 술도 한잔하며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마냥 룸메이트와의 생활이 좋았던 것만은 아니었다. 이제 새내기이고 부모님께, 집에서 떨어져 사니만큼 풀어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학업과 학점에 신경을 많이 쓰던 나와는 달리, 형은 일찌감치 취업이 확정된 4학년이었고, 방에서 공부를 하거나 과제를 하는 동안 형은 뒤에서 게임을 하는 등 여러모로 신경쓰일 일이 제법 되었다. 하지만 나이차도 많이 나고 사람에게 싫은 소리 못하는 내 성격에 그럴 때마다 괜히 속으로 끙끙 앓을 뿐 대놓고 내 의견을 피력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여차저차 1학기가 지나가고, 방을 옮겨 새로운 룸메이트와 함께 다시 기숙사 생활은 이어졌다.

지금은 없어진 제도이지만 그 때 당시의 방학 때에는 자신이 원하는 룸메이트와 함께 생활할 수 있는 나름의 장점(?)이 있었다.

그 뒤로도 사실, 전체적인 기숙사 내적 생활은 그다지 다른 건 없었다. 학기나 방학 등 시기가 되면 방을 옮기고, 같이 생활하는 룸메이트가 바뀌고... 하지만 그 때마다 그다지 민감하지 않고 오히려 둥글둥글한 내 성격 탓인지 아니면 룸메이트를 잘 만났던 탓인지 큰 충돌없이 항상 기숙사생활을 마감했던 듯하다. 기숙사에 사는 과 동기들과 얘기를 할 때면 ‘내 룸메이트는 좀 이상하다.’,‘난 룸메이트와 이런 것 때문에 싸웠다.’ 등등 여러 고충을 토로할 때도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큰 공감을 하지 못했던 듯하다.

현재 나는 어느덧 06의 ‘고학번’, ‘예비역’, ‘복학생’ 등의 타이틀 아닌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3학년이 되었다. 나이 역시 조금 있으면 27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대학입학 후 휴학기간 3년을 제외하고는 한번도, 방학때조차 기숙사를 떠나본 적이 없었다. 이유라면 여러 가지를 댈 수 있겠지만, 그만큼 기숙사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답답하다느니, 혼자 사는게 편하다느니 등등 여러 이유로 중도에 기숙사에서 벗어난 친구, 후배 녀석들도 있지만, 나에겐 ‘기숙사’ 라는 자체가 어느덧 인생에서 10년 가까이 내 집이 되어주고 나의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물론, 기숙사를 이용한다면 많은 장점이 있다. 학교도 가깝고, 수업 준비물을 챙기지 않아도 금방 다녀올 수 있고, 동아리 활동이나 과 활동, 친구들과의 친목을 다지는데 있어서도 이득이 많고, 식사도 제공되며 세탁기 등의 부대시설 이용에도 큰 제약이 없으며 샤워실 등의 시설도 못지않게 훌륭하다. 시험기간에는 굳이 도서관을 이용하지 않아도 방과 가까운 지하의 열람실에서 조용한 공부환경을 제공받고, 매점 역시 멀리 나가지 않아도 되 그 유용성은 배가 된다.

하지만 이는 근처에서 자취를 하거나 하숙을 하는 학생 또한 같은 연유가 될 수 있다. 나에게 있어서 기숙사는 어찌보면 학업 후에도 학교와 나, 혹은 내가 ‘성균관대’ 학생이라는 연대감을 이어주긴 하지만 학교 내에서 느끼는 학생 특유의 불편함이 아닌 집과 같은 편안한 안식을 동시에 주는 존재였다. ‘새벽 한 시 이후 통행금지’ 의 사칙조차 자칫 흐트러질 수 있는 내 생활을 바르게 잡아 줄 수 있는 멘토같은 존재로 느낀다면 그다지 불편할 것은 못 되었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지관에서만 3년을 지내었다. 내가 성균관대학생이 된지도 어언 6년이 다되어간다. 단순히 익숙함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난 지금도 친구들이나 후배와의 술자리 등에서는 기숙사에 입사할 것을 권유한다. 가장 많은 학생들의 걱정은 바로 ‘생활’ 문제이다. 협소한 방안에서 생판 처음보는 형, 동생 혹은 동갑내기와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실제로 통학과 비용 등 기타문제로 기숙사에 살고있는 지기들은 가끔 룸메이트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본다면 상대역시 나 때문에 내가 모를 불편을 겪거나, 그들의 친구들에 나에대한 불만을 늘어놓고 있을 수도 있다. 사회란 같지 않은가. 결국 혼자 사는 경우는 없다. 물론 일터에서 같이 부딪히는 것과 편안히 쉬고 싶은 나의 잠자리, 생활공간에서 부딪히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바꿔 생각한다면, 같이 사는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면 어디서든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 있어 긍정적인 효과를 이끌어내는 리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말이다.

모든 사람에게 나는 그렇다, 내 생각과 같아라, 이런 식으로 강요하지도 않고 같이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들은 모두 그들의 생각이 있고 가치관이 있고 그들만의 세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건 같이 사는 법을 배우는 것만큼 낯선 사람과 함께 같이 사는것 처럼 좋은 법이 있을까 싶다.

 

이제 3학년도 12월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이번 학기가 끝나면 사실상 4학년이라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제 졸업이란 과녁을 향해가는 길에 어깨가 점점 무거워 질때가 된 것이다. 내 남은 1년의 대학생활, 그 길 역시 성균관대학교 기숙사, ‘봉룡학사’와 함께 할 것은 두말할 리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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