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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학년도 생활수기 응모작 - 김동진
번호 : 24 등록일 : 2011-12-13 조회수 : 2358

[ 말미잘과 흰동가리 ]

 

때는 2007년 겨울. 달력은 3월을 가리켰지만 여전히 겨울 녀석의 차디찬 심술은 끝나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옷차림은 여전히 두터웠지만 그 얼굴에는 이미 저마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는 설렘과 따뜻한 기운이 가득했다. 지방에 살던 나로서는 그 때 당시, 부모님과 떨어져 나만의 공간을 갖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대학교에 가면 공부하라고 잔소리 하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수업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야단치는 담임선생님도 없고, 대리출석 해주는 좋은 동료들도 생길 것이고, 밤늦게까지 놀아도 된다는 불편한 진실은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한마디로 소화시킬 수 없는 방대한 양의 자유란 음식물이 내 앞에 차려져 있는 꼴이었다. 먹을 생각에 행복하긴 하지만 잘 먹고 소화시키는 방법을 모르는 상태였다.

 

20년 동안 나의 자유로운 마음가짐을 곁에서 지켜보신 부모님의 긴 설득 끝에 자취는 하지 못하고 기숙사에서 한 학기를 지내보기로 했다. 기숙사 신청 결과 지관에 배정되었다. 아직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변화가 컸던 순간은, 군대 훈련소 입소 전 날과 기숙사 입사하는 날을 말한다. 전국 각지에서 온 많은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괜히 들뜨고, 또 한 학기 동안 가족처럼 지낼 룸메이트를 만날 생각에 그 날은 잠이 오지 않았다.

드디어 기숙사에 입사하는 날이 되었고, 내가 배정받은 호실에 문을 열어보니 방이 생각보다 깨끗하고 아늑했다. 지금은 신관이 새로 지어져서 선택의 폭이 넓어졌지만 그 때에는 지관만한 곳이 없었다. 봄을 떠올리게 하는 연두 빛과 베이지 빛의 벽과 가구들이 아주 마음에 흡족했고, 나의 집 방보다 오히려 좋았다. 룸메이트는 미리 입사를 해서 이미 짐 정리를 끝내놓고 잠깐 나간 듯 싶었다. 짐 정리를 하는 도중에 룸메이트가 오면 괜히 당황스럽고, 머쓱해질까봐 짐 정리를 빨리 하고, 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 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순간적으로 나의 룸메이트와의 첫 대면의 순간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끼익~ 안녕하세요?” 룸메이트가 먼저 인사를 했다.

“어. 안녕?” 기숙사가 처음이었던 나는 룸메이트도 당연히 나와 같은 나이인 신입생인 줄로만 알고 보자마자 반가운 마음,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반말이 먼저 나와 버렸다. 몇 분의 대화 끝에 나보다 2살 많은 형임을 알았고, 이름도 2글자라서 바로 기억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대학교에 들어와서 맨 처음 만난 사람, 5년이 흐른 지금 이 시점까지도 연락이 닿는, 내게 대학교 생활에 있어 큰 지침이 되어주는 사람과의 인연이 그렇게 기숙사 작은 방에서 시작되었다.

 

형은 이미 대학생활 2년을 마친 상태였고, 성적도 꽤 우수했다. 그 때 당시 나는 1학년이었기 때문에 기숙사 신청을 하면 크게 모나지 않는 이상 합격이었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이 기숙사 합격 여부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형과 나는 잘 맞긴 했지만, 처음부터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다. 친구가 아닌 형과 같이 생활하는 것이 나에게는 조금 어색했고, 내 친구를 대하는 것만큼 편하지 않았다. 형은 일찌감치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고 있었다. 시험기간이 아닌 때에도 한 눈에 보기에 전공책 3권은 들어간 듯한 가방을 메고 도서관에 가서 기숙사 통금 시간 몇 분 전에 들어오곤 했다. 나로서는 2인실을 넓게 혼자 쓰는 느낌이 들었고, 나가서 놀지 않으면 주로 방 안에서 있게 되어서 공부는 단연 점점 뒷전이 되고 있었다.

그렇게 중간고사 기간이 다가왔고, 불안한 예감은 언제나 적중하듯이 나의 시험 점수들은 10월 초가을 기온과 비슷하였다. 고등학교 때 구경하지도 못했던 점수대가 수두룩했음은 물론이고, 게다가 더욱 인정할 수 없는 사실이 나를 괴롭혔다. 나와 매일 놀고, 함께 했던 굳건한 동료인줄만 알았던 친구들의 시험 점수가 내 점수의 몇 갑절은 된다는 사실이었다. 나름 고등학교 때에는 공부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대학교 와서 이렇게 첫 학기, 아니 첫 시험부터 무너지는 모양새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형은 시험기간을 가리지 않고 여전히 아침 일찍 일어나서 씻고 가방과 함께 사라진 뒤 밤늦게 돌아왔다. 가끔 식권 가지러 방에 들어오는 것을 제외하면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느 날 밤, 형에게 나의 성적에 대한 고민을 말했고, 형은 1학년이 성적 걱정한다며 장난 섞인 말로 놀렸다. 내가 제법 심각해보였는지 내일부터 형과 똑같이 생활해보자고 말했다. 형자신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도서관 갔다가 수업 들어가고, 일단 방을 떠나면 자러 오기 전에는 들어오지 않겠다는 각오로 생활한다고 조언해 주었다. 나도 무언가 느끼는 바가 있어 그 날부터 형과 똑같이 생활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느슨해지고 게을러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몇 달 동안 9시 수업도 늦잠 잔 탓에 들어가지 못하고, 생활패턴도 엉망이 되어버린 상태에서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활로 돌아가려니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형이 다정다감하게 나를 깨워주었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때는 베개로 조금은 과격하게 깨워주기도 하고, 후에는 발로 터프하게 깨워주기도 하면서 난 조금씩 일찍 일어나는 것에 익숙해져갔다. 처음에는 일찍 도서관에 가서 자리 발권만 하고, 가서 또 엎드려서 자기도 하고, 멀뚱멀뚱 신기한 동물 구경하듯이 남들 공부하는 것을 구경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것들이 도서관에서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연습이 된 듯싶다. 형과 학과와 학년이 달라서 같은 수업을 듣지는 않았지만 매일 밥도 같이 먹고, 아침에 깨워주고, 학업이나 진로에 대한 고민 상담도 하면서 중간고사 이후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되니 서로가 많이 친해져서 방에 둘이 있어도 전혀 어색함도 많이 사라졌다. 주말에는 같이 농구도 하고, 부모님이 잠깐 오셨을 때 함께 나가서 부모님께 형을 소개도 하며 맛있는 것도 먹고 정말 친 형처럼 따르면서 지냈다.

 

대학교의 한 학기는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초여름이 오기 전에 종강하고 고등학교 때에 비해 일찌감치 방학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뭔가 바쁘게 지내다 보니 시간이 더욱 빨리 지나간 듯 느껴졌다. 중간고사에서 다른 학우들에 비해 점수가 많이 뒤쳐지긴 했지만, 그 이후부터는 과제도 열심히 하고, 어려운 과제는 형에게 실질적인 도움도 받고 하면서 차근차근히 잘 준비했다. 기말고사 기간도 불현 듯 찾아왔고, 학기 마지막 떨어지는 체력과 의기는 형과 야식을 먹으면서 극복하였다. 기말고사 기간이 끝나니, 어느덧 퇴사하는 날이 다가왔다. 아직 성적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중간고사를 봤을 때보다는 무언가 기억에도 남고, 성적 공시 날이 괜스레 기대도 되었다.

 

한 학기 동안 밤낮 구분 없이 누워있던 침대, 정들었던 내 방을 뒤로 한다는 것과 또 형과 떨어진다는 게 아쉬웠다. 짐을 박스에 차곡차곡 정리하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하지만 아예 헤어지는 것도 아니고, 방학이 지나면 2학기 때에 또 보게 될 것이고, 같은 기숙사를 신청하면 인연이 닿는다면 2연속 룸메이트가 될 수도 있고, 아니어도 지금처럼 같이 밥 먹고 생활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보니 슬프지 만은 않았다. 짐을 다 정리하고, 부치고 그 날 저녁에 형과 맥주 한 잔 하면서 대학교 첫 학기를 마무리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적이 공시가 되었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평범한 성적을 받았다. 하지만 나의 중간고사 점수를 생각해본다면 스스로에게 대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형에게 성적 자랑을 하니까 형은 이번에도 성적우수 장학생이 될 것 같다는 자랑다운 자랑을 늘어놓았다.

다음 학기가 되고, 전처럼 꼭 옆에 붙어 다니지는 않았지만 어려운 고민이 생기면 내가 가장 먼저 연락하는 것은 형이었고, 형은 무심한 듯 하면서 나에게 해결책을 주었다. 지금도 연락이 닿아서 대학원 진학과 취업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나에게 대학원 졸업생으로서 아낌없는 조언을 해준다. 갑자기 차려진 밥상에 어찌할 줄을 몰랐던 어린 나에게 대학생으로서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알려준 우리 형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은 너무도 아찔하다. 2007년 겨울에서 여름까지, 기숙사에서 형을 처음 만나고 함께 즐거웠던 기억들은 내 대학생활 중 기억에 남는 몇 되지 않는 소중한 자산이다.

말미잘과 흰동가리는 서로에게 도움을 주며 함께 살아가는 공생관계에 있는 생물들이다. 아직은 형에게 도움 받은 적이 많지만 나도 실력을 쌓고, 대학생활 잘 해내서 형에게 도움을 주는 흰동가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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