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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학년도 생활수기 응모작 - 김상민
번호 : 13 등록일 : 2011-12-12 조회수 : 2134

 

                                 [ 기숙사를 추억하며. ]

 

6월의 중순 치고는 나름 선선했던 아침의 공기. 텅 빈, 그저 처음 모습으로 돌아갔을 뿐인데도 그세 낯설어진, 방안의 풍경. 창 밖 너머로 보이는 쌍둥이 신관과 그곳에 드리운 햇빛. 새벽같이 일어나 부리나케 챙겨놓은 짐들은 이미 화물차에 실려 떠나갔건만, 아직까지 이 방에 밴 4개월간의 자취. 이번이 벌써 5번째인데도 언제나처럼 센티멘탈해지는 감정은 용케도 그 자취를 ?i더니, 기어이 나를 이곳에 다시 앉혀두었다. 그저 책상 앞에 놓인 작은 캐리어만이 집에 갈 차비를 마친 채, 늦장을 피우는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5번째다.

아침 새 식어버린 침대에 눕자, 지나간 4번의 오늘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허둥지둥 정신없이 돌아다니던 귀여운 신입생도, 아쉬움에 몇 번이고 손을 흔들던 정 많은 후배도, 인사도 없이 날름 방을 빠져나온 용기 없는 선배도 모두 그 안에 있었다. 입가에 피식 미소가 배어났다. 오래되 흐릿해진 기억속에서도 여전히 내 모습들은 선명히 자리를 지켰다.

몸을 일으켜 퇴사 전 제출해야 할 물건들을 정리했다. 능숙하게 써 내려간 비품점검표와 열쇠를 주머니에 넣고 지갑에서 사생증을 꺼냈다. 입학해 처음으로 받았던, 나름 멋스럽게 코팅된 보라색 종이사생증 대신 다부지고 단단해진 새로운 사생증이 손에 들렸다. 하지만 왠지 맘껏 구부려지지 않는 이 녀석보다 어딘지 허술해보였던 예전의 녀석이 더 눈에 아른거렸다. 그렇게 그것으로 시작한 과거와의 해후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를 5년 전, 어느 추운 겨울날로 돌려놓았다.

2006년 2월의 어느 날, 부랴부랴 사생증에 넣을 사진을 찍고 돌아온 어리바리 신입생의 손에도 처음으로 사생증이 들렸다. 잘 빨려진 침대보와 잔뜩 구겨진 비품점검표, 조그마한 나무 조각에 호실이름이 새져진 열쇠도 함께 건네졌다. “후-”받아든 물건들을 챙기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을 때, 나도 모르게 한숨이 푹 흘러나왔다. 학교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설렘이 긴장에 꺾여버린 기분이었다. 하늘 높이 솟아있던 기숙사 건물만큼이나, 커다란 벽이 내 앞을 가로막는 느낌이었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체감한 ‘혼자 생활하기’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강렬하고 막막한 첫인사를 건넸다.

단 두 명만의 공간에서, 그것도 생면부지인 사람과의 어색한 동거는 며칠간은 내게 큰 숙제거리로 다가왔다. 사람을 대하는 제주가 부족했던 나는 자꾸만 입을 다물려 했다. 스스로에게 답답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운이 좋게도 그 답답했던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제복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던 내 인생의 첫 룸메이트 덕분이었다.

당시 4학년으로, 한참 선배였던 룸메이트는 처음부터 거침이 없었다. 통성명도 하기 전에 “신입이냐?”라고 묻더니 그 때부터 나를 동생처럼 챙기기 시작했다. 말주변이 없던 내가 입속에서 말이 되지 못한 단어들만 빻아대고 있을 때면 선배는 무뚝뚝한 얼굴로 귀신같이 필요한 것들을 가르쳐주었다. 생활수칙을 물론이거니와 세탁기 사용법, 남는 식권 활용법, 기숙사 행사 그리고 생활하는 동안 터득할 팁들까지도 모두 선배에게 배울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사람들이 없는 한가한 시간을 골라서 화장실을 이용했고, 처음으로 옷을 다려보기도 했으며 시험기간엔 자연스럽게 기숙사 지하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물론 룸메이트 선배와 한 방을 쓰는 것 역시 더 이상 어색하고 낯선 경험이 아닌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높기만 했던 기숙사 건물은 어느새 아담한 나의 공간으로 변해있었다.

선배와 생활하면서 맛볼 수 있는 또 다른 경험은 아이러니하게도 군대였다. 당시 선배는 4학년 학군단이었기에 선배의 옆에 있으면 심심히 않게 경례구호를 들을 수 있었다. ‘충성!’이라는 소리와 함께 식당에서건 문 앞에서건 우렁차게 경계를 하던 후배기수들의 모습을 선배는, 유난스럽다며 탐탁지 않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에겐 제법 유쾌한 경험이었고, 특히 ‘군인은 움직이면서 무엇을 먹을 수 없다.’라는 선배의 설명을 눈앞에서 목격했던 건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시간이 지나 선배와 헤어질 때까지, 나는 꽤나 그 선배를 의지했었다. 선배는 에둘러 말하는 걸 싫어했다. 전공 선택에 관한 내 질문에도 과감하게 자신이 다니는 전공에 대한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내가 선택한 전공역시 그 선배의 전공이었고, 선배가 추천해준 교수님의 수업을 전공 첫해에 수강했었다. 공부하는 방법, 사회의 초년생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방법에 관해 선배는 학부연구생답게 말보다는 자신이 준비하고 실천해오던 결과물을 보여주는 걸로 대신했다. 그렇게 선배는 ‘어려움을 겪어봐야 머리가 잊어도 손과 발이 기억할 수 있다.’며 헤어지는 순간까지 용기를 불어넣어준 고마운, 내 첫 룸메이트이었다.

짧았던 여름방학이 지나고, 나는 새로운 룸메이트를 만났다. 그는 군대를 막 전역한 2학년 선배였다. 선배는 착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명절에 집에 내려가는 나에게 조심히 들어가라며 안부문자를 보내주는 등,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써주었다. 끙끙거리며 과제에 몰두하는 사이에 책상에 넌지시 음료수를 올려주던 자상한 위인이었고, 혼자 먹지 못한 저녁을 해결하는 게 미안하다며 구지 큰 피자를 사들고 오던 섬세한 사람이었다. 아직까지도 그 때먹었던 피자가 먹물피자였다는 걸 나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고마웠던 선배들과 함께 방을 썼던 순간 뿐 아니라, 미안했던 후배들과의 시간도 기억은 어김없이 간직하고 있다. 이제 막 2학년에 올라간 초짜 선배와 함께 시작한 07년도의 기숙사 생활은 당시 신입생들에겐, 분명 내가 신입생 때 느꼈던 그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겨우내 차가워진 바람이 점점 녹음의 옷을 껴입던 1학기 내내, 나와 신입생 룸메이트가 나눈 대화는 고작 여자들 하루치 수다도 채 되지 않았었다. 바쁘다는 개인적인 핑계는 다음 학기에도 이어졌고, 2학기에도 역시 4개월간 얼굴을 맞대고 살아온 룸메이트와는 인사도 없이 헤어졌다.

복학을 하고 새로운 기숙사에 들어왔을 때, 나는 또 한 번 거대한 벽에 부딪혔었다. 같은 호실에 있는 다른 4개의 방. 룸메이트의 얼굴조차 제대로 확인키 어려운 날들이 계속되어 갈 때쯤 나는 스스로에게 자문했었다. 나는 4년 전 그들에게 어떤 룸메이트였을까? 부끄러운 과거와의 조우에 나는 가만히 있기가 힘들었다. 용기를 내어 같은 호실에 있는 다른 방을 노크했다. 그러자 막막했던 신입생 시절, 그 때의 기숙사 건물보다도 높아 보였던 방문이 신기하리만치 너무나 가볍게 열리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먼저 건넨 내 인사에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밝게 화답해 주었다.

‘띵동-관리실에서 알려드립니다.’ 관리실에서 다시금 퇴사시간을 알렸다. 추억을 습작하는 사이, 시간은 제법 흘러 있었다. 빈 방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나는 캐리어를 끌고 방문을 나섰다. 방문을 닫고 현관문을 나서자 같은 호실을 쓴 다른 방 후배가 멀리서 인사를 했다. “나중에 보자” 나는 가볍게 화답하고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내 등에 후배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닿아 부서졌다.

“형 고마웠어요.”

뒤돌아보니 이미 후배는 방안에 들어간 뒤였다.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던 센티멘탈한 기분과는 다른, 처음 느껴보는 새로운 기분이 온몸을 감쌌다. 5년 전엔 입 밖에 내지 못했던 말. 4년 전엔 차마 들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말. “나도 고맙다.” 나는 누구라도 들으라는 듯 중얼거리며 다시금 추억의 소리를 듣기위해 기억을 뒤적거렸다. 멀리 햇빛에 드리운 창 너머로, 드르륵 드르륵- 캐리어의 바퀴소리에 맞춰 경쾌해진 내 발걸음이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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