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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학년도 생활수기 응모작 - 최현정
번호 : 9 등록일 : 2011-12-12 조회수 : 2099

[ 봉룡학사와 함께 만든 1년 ]

 

봉룡학사. 처음 들었을 때 ‘무슨 기숙사 이름 한번 거창하게 지었네?‘ 하고 생각했다. 신관을 보고 이름이 가진 크기를 금방 납득했지만 나는 1년 내내 작고 아담한 예관에서만 살았으므로 시설에 대해서는 말을 아껴야겠다. 2011년, 무엇이든 처음은 뜻 깊고 의미 있다고 하듯이 아마 나 같은 새내기들은 대부분 올해 기숙사에서 겪은 경험이 무척 소중했다고 할 게 뻔하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다. 비록 기숙사 생활에 노하우가 생길 만큼 지낸 시간은 많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신선하고 잊혀지지 않는 일상들을 말해주고 싶다. 사실 난 고등학교 때 6인 1실, 순수하게 잠만 잘 수 있는 기숙사에서 지냈었다. 그 땐 모두가 같은 반 아는 친구였기에 대학 기숙사에 대해선 막연한 기대와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기숙사를 신청하면서 2인 1실이라며 좋아했던 것도 잠시 룸메이트에 대한 걱정이 물밀 듯 몰려왔다. 집이 먼 탓에 조기입사를 해서 혼자 짐을 푸는 순간까지도 ’까다로운 선배면 어떡하지?‘부터 시작해서 ’그냥 서로 없는 사람처럼 살면 되지 않을까?‘ 이런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다. 이런 나에게 봉룡학사가 끼워준 첫 단추, 첫 룸메이트는 고민한 시간이 아까울 만큼 좋은 언니였다. 언니가 입사하는 아침에 늦잠을 자서 초췌한 몰골로 첫 인상을 남긴 건 지금도 좀 부끄럽지만. 어떻게 인사드려야 할까, 긴장한 마음에 쓸데없이 네이트온과 인터넷창만 번갈아가며 보고 있었다. 그 때 들려온 목소리. “이름이 뭐야?” 묻는 말이 생각보다 친절해서 순간 머릿속에 그리던 온갖 안 좋은 상황들이 하얗게 지워지며 이번 학기는 괜찮을 거 같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번호까지 교환하고 나서 언니의 말에 따라 방에서는 실내화를 신자는 규칙을 정했다. 인간관계란 역시 속으로만 끙끙댄다고 어떻게 되는 게 아니라 인사라도 한마디 나눠봐야 진전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달은 날이었다. 그러나 나와는 달리, 내 주변에는 퇴사할 때까지도 룸메이트와 말 한마디 안한 친구들이 많았는데 조금 안타까웠다. 우린 얘기를 통해 서로 궁금한 점이나, 주의해야할 점을 알게 되서 나름 집처럼 편하게 지낼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언니를 귀찮게 한 것 같기도 하고 좀 그렇지만. 또 언니는 4학년이고 나는 혈기왕성한 1학년이었기에 같이 있을 경우는 대부분 밤이었다. 우리는 둘 중에 한명이 자려고 누우면 거의 곧바로 불을 껐다. 후배인 나야 ’감히 선배님 주무시는데‘ 알아서 눈치보고 행동했었지만, 내가 10시에 누워도 잠은 푹 자야 된다고 불을 끄는 언니의 배려에 감동했었다. 꼭 엄마 같았다고 해야 하나? 밤늦게 외출할 때도 언니가 가끔씩 “어디가?”하고 물어보시는 통에 나중엔 묻지 않아도 “친구 좀 만나고 올게요.” 말하고 나가는 게 생활이 되었다. 그리고 집에 가서 이 얘길 하니 부모님께서 아주 좋아하셨다. 우리 학교 기숙사는 타학교에 비해 학생의 자유를 존중하는 대신 방에 오랫동안 안 들어와도 모르는 맹점이 있었는데, 그런 룸메이트 언니랑 산다니 믿을 수 있겠다고 하셨다. 언니와의 이야기는 3할도 하지 않았으나, 어차피 또 하게 될 테니 이제 1학기 동안 있었던 지극히 나 혼자만의 경험담에 대해서 말하는 게 나을 듯하다.

일단 고등학교에서 막 올라왔기 때문에 가장 큰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던 기숙사 식당. 인의예관의 식당을 처음 본 소감을 말하자면 완전히 문화적 충격이었다. 항상 애들이 무리지어 먹는 것만 보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니 이게 뭔가 싶었다. 현대인의 삭막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아, 사회란 이런 거구나.’ 했는데, 웬 걸. 몇 주 안 돼서 나도 그 중에 한명이 되어버렸다. 친구랑 싸웠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수업 시간도 안 맞고 그냥 밥만 먹을 건데 혼자 먹는 게 뭐가 대수지? 라고 여기게 됐을 뿐이다. 처음엔 사생증과 식권도 어색했었다. 그래서 언제 한 번은 사생증 제2공대에 두고 와서 경비아저씨께 사정을 해봤지만 단호하게 거절당한 적도 있다. 눈물을 머금고 가지러 갔다 왔더니 아저씨 왈, “내 일인 걸 어쩌겠어?” 그 이후 나는 항상 사생증을 휴대하며 매시간 수고하시는 경비아저씨들께 전과 다른 마음으로 인사드리게 되었다. 다음으로 공동화장실. 수능이 끝나고 집에만 있다가 모두에게 개방된 화장실, 샤워실을 쓰려니 진짜 적응하기 힘들었다. 초창기엔 새벽까지 안자고 사람이 없을 때까지 기다리거나 4~5시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는 게 일상이었다. 덕분에 유리문이 고장 난 칸에 들어갔다가 아무도 없는 새벽 3시 샤워실에 30분 정도 갇히는 짜릿한 경험도 할 수 있었다. 결국 계속 문과 씨름해서 나오긴 나왔지만 그 때의 기분은 표현할 방도가 없네. 키가 작아 세탁기에서 양말 꺼내다 쥐나서 혼자서 낑낑대던 것도 생각나고. 또 그 비슷한 시간에 배가 아파서 화장실 앞까지 왔는데 누가 세면대 거울을 보며 통화하고 있어서 돌아온 적도 있었다. 나도 나지만 그 사람도 참 대단했던 것 같다. 이제 7시쯤 되면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께서 화장실을 전날의 잔해를 치우고 쾌적한 상태로 만들어 주신다. 전에는 내게 몇 번 말도 걸어주셨는데 요즘은 늦잠을 자니 뵙질 못해서 아쉽다. 마지막으로 퇴사. 경험상 짐을 빼기 위한 준비물은 딱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짐차를 빌릴 때 맡길 휴대폰과 도와줄 친구. 나 같은 경우는 휴대폰을 두고 와서 도와주러 온 친구의 폰을 맡겼다. 친구야 미안. 그 외 일련의 과정은 사생회의 택배사업 덕택에 일사천리로 끝낼 수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2학기도 1학기와 똑같이 흘러가고 있다. 굳이 비슷하다는 말을 두고 똑같다는 단어를 택한 이유? 그거야 방의 위치만 바뀌었을 뿐, 룸메이트 언니는 바뀌지 않았으니까! 다시 같은 방을 배정받았다는 걸 안 순간 ‘언니한테 천원 빌려서 안 갚은 걸 봉룡학사에서 어찌 알았지?‘ 기절할 뻔 했다. 분명 퇴사하기 전 농담처럼 또 같은 방 될 수 있냐고 물었을 때 언니도 그런 경우는 들어본 적 없다고 자신하셨는데. 어찌되었든 나는 아직도 나를 잘 챙겨주시는 룸메이트 언니 덕을 보며 살고 있다. 한 학년이 저물 동안 너무도 익숙해진 나와 룸메이트 언니는 여전히 사소한 대화 속에 잘 지낸다. 언니. 말 못한 건데 2달 전에 언니 침대 밑으로 잡기 무섭게 큰 지네가 들어갔어요. 저번 주에 제가 잡은 지네 새끼가 좀 마음에 걸리네요. 요즘 우리 문 앞에 엎드려 절하는 벌레는 또 뭘까요? 가끔 제가 언니를 너무 성가시게 한 건 아닌지 묻고 싶지만 그렇다고 하실까봐 속으로만 삼켜요. 언니가 졸업하면 다시 이런 우연은 없을 테지만, 내가 보낸 첫 1년은 봉룡학사와 합작한 가장 기분 좋은 추억으로 남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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