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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있어, 살아 있어.
번호 : 259 등록일 : 2017-11-27 조회수 : 981

[작품 의도]
  우리 학교 기숙사만의 특징, 그것은 학우들이 기숙사에 대해 갖고 있던 고정적인 지리적 인식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학교와 기숙사 사이의 거리에 대한 학우들의 불평과 의문점에 대해서, 내가 그 길을 걷던 도중 얻어낸 해답을 알리고자 한다. 작품명인 ‘살고 있어, 살아 있어.’는 기숙사에 살고 있기 때문에 내가 살아 있음을 표현하려고 했다. 그 관계가 왜 성립될 수 있는지는 작품 속에 드러난다.

 

                                                                             살고 있어, 살아 있어.
       
                                                                                                                                                     2017312150 김정현


  2017학년도 1학기 개강 첫 날, 나는 충격에 빠졌다. 5시간 30분. 플러스 마이너스 30분 정도. 이 시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제 말하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 집에서 학교 사이의 왕복시간, 즉 내 통학 시간....

  과거로 잠시 돌아가자면, 방학 동안에 내가 다녔던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친구들이랑 부산으로 여행도 갔다 오면서 우리 학교에 들어오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있었다. 그 이후 2월 초쯤? 학교에서 알림이 왔는데, 기숙사 신청을 하겠냐는 내용이었다. 나는 경기도 용인시에 살고 있었다. 경기도나 서울이나 뭐 거기서 거기 아니겠느냐 하면서 ‘기숙사 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내 일생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실수를 저질러버렸다.. 길치라는 소리도 자주 듣긴 했지만, 그래도 수능 때 한국지리도 응시했고(?) 어느 정도 지리 개념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어쨌든 중요한 것은 개강 이후 약 2주 간 지옥과 같은 통학을 경험해 보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살다보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대학 생활의 매력은 통학이지’라는 헛소리를 했던 과거의 나를 부정하며, 하루살이마냥 오늘만을 살아가리라했던 불쌍한 나에게 우리 학교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었다. 그것은 바로 ‘중도입사’..... 그 사실을 알자마자 바로 중도입사 신청을 했으며 정말 운이 좋게도, 교환학생 전용 기숙사인 C-하우스에 입사할 수 있었다. C하우스의 장점은 상당했다. 성신여대 앞이라 문화시설이 많았으며 1층에 주방도 있어서 간식을 사와서 먹기 편했다. 그리고 방의 전망이나 내부 분위기도 좋아서 가위에 잘 눌리는 편인 나도 잠을 깊이 잘 수 있었다.


 

  단점이라 할 것은, 혜화역으로부터 두 개 역이나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대중교통으로 통학을 해야만 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약간의 충격으로 다가왔는데, ‘기숙사’라는 것은 당연히 학교 내부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지금 거주 중인 E하우스에도 해당이 되는 사항이다. C하우스보다는 가까운 거리이나, 사실 ‘일반적인’ 기숙사라고 하기에는 조금 먼 거리이다. 다른 학교를 다니는 고등학교 동창들과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다들 이렇게 말하고는 한다. ‘그게 무슨 기숙사냐? 거의 가까운 거리에서 통학하는 수준 아니야?’ 나는 기숙사에 입사한 이후에 하루에 한 번 600주년 기념관을 향해 경건의 춤을 추고는 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의문은 들었다. 왜 우리 학교 기숙사는 다른 학교의 그것에 비해 먼 거리에 있는가?


 

  오전 10시 25분, 하루의 마지막 셔틀버스가 출발하는 시간이다. 내 시간표는 대부분 12시 이후의 오후 시간대여서 늦잠을 자느라 마지막 셔틀마저도 타기가 힘들기 일쑤였다. 그래서 기숙사에 사는 데도 불구하고 교통비가 은근히 많이 소모되었다. 시험 기간 때에는 아침에 공부를 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무거운 몸을 일으켜 셔틀을 타고는 했다. 사실 기숙사가 다른 학교처럼 ‘가까웠더라면’ 굳이 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닐 일도, 기숙사 셔틀이라는 것이 있었을 리도 없었을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빗방울처럼 머릿속에 스며들어 왔다.

  오후 9시 40분에 중도(중앙학술정보관)에서 나와서 E하우스까지 걸어가는 데에는 약 30분 즈음 소요된다. 여느 때처럼 무거운 책가방을 함께 짊어주는 어깨는 갑자기 주눅 들어 보인다. 아무래도 오늘 철입(철학입문) 수업이 내 육신과 정신을 산산조각 내버렸기 때문이었을까, 기숙사까지 걸어갈 생각에 약간은 지친 것 같다. 평소처럼 올레사거리를 지나고, 혜화역 3번 출구를 지나고, 마로니에 공원도 지나면서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무거운 발걸음은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나는 오늘 무엇을 했는가, 나는 내일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관한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이리저리 관통한다. 30분의 귀가시간동안, 적막한 사유과정은 적절한 시련과 여유의 경계에서 두근거리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많고 많은 내일들을 사뿐히 고민한다.

  문득 이리저리 맴돌던 관념의 화살촉이 쿡쿡 찔러대기 시작하자 오늘 배운 데카르트가 생각이 났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데카르트는 인간이 사유하는 존재이기에 실체라고 주장하였다. 나는 스스로에게 한 번 물었다. ‘생각은 하고 사니?’라며. 지금까지 ‘나’를 돌아볼 시간, 아마도 있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하려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잠깐 둘러보는 것도 벅차기 때문이었다. 나를 비롯한 우리들은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세대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두꺼운 전공 도서를 읽으면서 잠시 책갈피를 끼울 여유조차 없는 듯하다. 반성하지 못하는, 계획하지 못하는 시대, 과연 살아있는 시대인가?


 

  길은 목적지가 어디냐에 따라서 같은 길이라고 할지라도 그 의미가 변화한다. 내가 걷는 길은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점에서, 기숙사의 일부가 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으로 올라가던 중 기숙사 생활 콘텐츠 공모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보고 바로 떠오른 주제가 바로 그것이었다. 기숙사 시설이 어떤지,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의 세밀한 내용은 기숙사 홈페이지나 에브리타임에 있는 친절한 게시물에서 찾을 수 있으니 딱히 중점적으로 말하지는 않겠다.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주제는 바로 학교에서 기숙사까지의 ‘길’이다. 많은 학우들이 불평하고, 그냥 버스타고, 택시타고 싶게 만드는 그 길이다. 물론 또한 나에게도 지옥 같았던 과거를 망각하고 잠시 입이 삐쭉 나오게 만들었기도 하다. 하지만 그 길을 걸으며 떠올린 ‘성찰’은,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 주변을 볼 틈도 없게 만든 지하철이나 버스라는 문명의 산물 속에서는 해내지 못한 것이었다. 내가 5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을 들여 통학했던 그 때는 어땠던가? 무거운 짐을 메고 낑낑대며 4호선을 기다리다, 잠시 몸을 풀려고 하면 서울역 도착,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쌩쌩 달리는데, 지나가는 풍경이 너무 혼란스러워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내 통학생활이 끔찍했던 이유는 단지 막막한 시간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기숙사로 걸어 돌아갈 때면 여러 가지가 보인다. SNS에도 많이 소개되는 맛집, 영화관과 인기 있는 연극, 멋진 옷들을 입은 마네킹,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청년과 잠시 앉아 그 노래를 감상하는 행인들이 바로 그것들이다. 느릿느릿 걸어가다 보면 E하우스 별관이 보이고, 본관 2층 정원에 잠시 앉아 쉬면서 ‘내일은 떡볶이 먹어야지’, ‘범죄도시가 벌써 나왔네?’, ‘코트를 바꿀 때가 됐는데’, ‘나도 어렸을 땐 기타 많이 쳤었지’라는 생각을 해본다. 마음 깊이 담겨 있던 것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는지, 슬그머니 표면에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시설이 좋다든지, 주변에 문화시설이 많다든지, 그것들은 단지 기숙사 생활하는 동안 체험할 수 있는 경험적이고 감각적인 장점이다. 오히려 나는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다는 그 지리적 특징이 핵심적인 장점이라고 생각한다(솔~직히 조금 더 가까우면 좋긴 하겠다). ‘기숙사’의 위치에 대한 나만의 고정관념을 깨고 내가 걸어온 길과 주위를 둘러볼 반성의 시간 또한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거리에 대해 불평을 느낄 수도 있는 학우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길을 걸으며 여유롭게 생각할 시간을 가져보라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기숙사가 조금 멀리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전혀 나쁜 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도 걷는다. 그리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을 본다.
나는 E하우스에 살고 있다. 그래서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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