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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공모전 | 과거수상작 | 2018년 이전 게시글의 상세 화면
오늘 저녁
번호 : 248 등록일 : 2017-11-23 조회수 : 1954

오늘 저녁

 

오늘 저녁은 집밥

집밥은 씨유

 

집밥이 떨어졌으면

오백보만 더 걷자

 

혜리의 7

고진많

 

 

 

 

한파

 

추운 겨울 토요일 새벽 4

더 놀겠다는 친구를 겨우 택시 태워 보내고

 

입구 키를 딱 찍고 들어가니

열려야할 자동문이 꿈쩍을 안 한다.

 

경비실을 밝히는 적막한 불빛

문을 통통 두들겨도 고개를 내미는 이는 없고

문 밖에 설치된 호출기가 떠오른다.

 

출구 키를 딱 찍고 이 문마저 영영 닫힐까

발로 잡은 채 호출기를 누른다.

 

경비실을 바라보는 애타는 마음

쩌렁하게 울리는 호출음에도 나와 보는 이는 없고

바깥바람이 추워 문을 닫는다.

 

덜컹

 

 

 

 

택배

 

난 분명 로션 한 통이 떨어졌다고 했는데

택배실 대형박스에 내 이름이 붙어있다

 

품 한 가득 힘겹게 들고 와 열어보니

로션 스킨 아이크림 수분크림 비비크림 선크림

핸드크림 홍삼액 부엉이인형…….

 

그리고 봉지 하나

봉지 안에 작은 봉지들

작은 봉지들 속 색색의 약들이 모여 있다

 

하얀 건 류마티스 약

분홍색은 갑상선 약

빨간 건 빈혈 약

노란 건 오메가쓰리

 

하나하나 봉지에 담았을 엄마의 뒷모습을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부엉이인형에 고개를 묻는다

 

 

 

분리수거

 

먹다 만 피자 박스는

종량제 봉투에 구겨 넣습니다.

 

비닐봉투로 묶은 일반쓰레기도

종량제 봉투에 구겨 넣습니다.

 

화장품 포장곽

종량제 봉투에 구겨 넣습니다.

 

치킨상자

청소아주머니가 오고 계시니

우물쭈물 서 있다가

이리 달라고 하시면 얼른 드리고

엘리베이터에 몸을 구겨 넣습니다.

 

 

 

 

하교 길

 

사거리만 지나면 금세 불빛은 줄어들고

고요한 가운데 차 소리만 시끄럽다.

 

창경궁. 꼭 가봐야지.

어느덧 11월도 다 지나가지만

그래도 여유가 생기면 꼭 가야지…….

 

은행을 밟고 수많은 약국을 지나

따뜻한 보금자리로 들어가면

또 다시 약속은 잊혀 진다.

 

 

 

 

전등 불

 

과제에 집중하다보면

갑자기 틱

어둠이 노트북 빛만 댕그라니 밝힌다

 

팔을 뻗어 휘휘 저으면

그제야 탁

다시 불이 들어온다

 

영화를 보다가도

다시 팔을 휘휘

 

귀찮고 짜증이 나다가도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는 날에

얼른 자라

그래 고마워

 

 

 

뜻밖의 발견

 

나는 우리 집이 어질러져 있는 게

언니 때문인 줄 알았다

 

근데 언니가 결혼하고도

집이 어질러져 있으니

오빠 때문인 줄 알았다

 

기숙사 방문을 연 어느 날

뜻밖에도 범인을 찾았다

 

 

 

수건

 

기숙사 수건은 보들보들

집 수건은 거칠거칠

 

수건이 더 필요해져서

집에서 챙겨주면

그것도 보들보들

집 수건은 거칠거칠

 

 

 

오늘 아침

 

오늘 아침은

조식

 

잡채

미역국

감자볶음

 

눈 뜨니 10시였다

 

 

 

칫솔걸이

 

하나 사려다

하나 더 샀다

쓰라고 말할 용기는 없어서

거울에 붙여놓으면 쓰겠지

 

빈 칫솔걸이를 확인할 때마다

쉽사리 말을 걸지 못하고

하난 언니 꺼예요. 말하지 못하고

 

그러다 어느 날 나란히 걸려 있는 칫솔을 보았을 때

내 소심한 혼잣말을 기꺼이 들어준 기분이었다.

친해지고 싶어요.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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