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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의 기숙사 생활 (ft. 엄마의 부재)
번호 : 246 등록일 : 2017-11-21 조회수 : 2278

21살의 기숙사 생활 (ft. 엄마의 부재)

 

김민경

<설레는 기숙사 생활의 시작>

 재수를 포함한 21년의 부산 생활을 뒤로하고 드디어 상경했다. 꿈꾸던 서울에서의 대학 생활 ! 학교에서 보내게 될 날들도 물론 기대가 되었지만 무엇보다 날 가슴 벅차게 만들었던 건 타지이기에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아니었나 싶다.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입사일, 부모님은 네 박스나 되는 짐을 차에 싣고 나와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한 학기를 보낼 빅토리하우스에 도착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방문을 열었다. 생각보다 내가 지내게 될 방은 허했다. ‘이게 끝?’이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으니 어느 정도였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가. 일반 기숙사가 아니라 임대 원룸이라 그런지 침대도, 책상도,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가져온 박스 몇 개와 이불 없이 놓인 민둥한 매트리스가 전부. 그때 느꼈다. ‘부산집이 아니라 이제 진짜 서울, 이곳에서 사는구나 하고 말이다. 짐을 다 옮기고, 엄마와 필요한 청소도구를 다이소에서 사왔다. 그곳에는 나처럼 오늘 기숙사에 들어온 친구들로 가득했다. 다 조금씩은 상기된 얼굴로 부모님과 함께하고 있었다. 조금 들뜬 마음으로 생활 용품을 사는 모습에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근처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작별 인사를 했다. 나는 괜히 머쓱해서 나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다고 팡팡 큰 소리쳤고, 우린 서로에게 잘 지내라고 하고 헤어졌다. 그렇게 방으로 다시 돌아왔다. 엄마가 청소를 해주고 가신 바닥에 벌러덩 누웠다. 찹찹한 바닥의 감촉이 새로웠다. 새하얀 벽지를 보며 잘 살아보자혼자 다짐하고 그날 밤은 조금 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을 안 하려고 애쓰며 잠에 들었던 것 같다.

 

<본격적인 홀로서기>

 낯선 서울에서의 학교 생활에 적응하느라 바쁘게 한 달쯤 보냈더니 어느 정도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빨래, 청소, 설거지, 요리 모든 부분을 스스로 하려고 하니 쉽지가 않았다. 도대체 엄마는 이걸 매일 어떻게 하셨나 싶었다.

 먼저 청소’. 룸메와 단 둘이 사는 방에 머리카락은 왜 이리도 많은지. 바닥에 앉았다가 일어나면 바짓단에 까맣고 긴 머리카락이 늘 따라붙는다. 일명 찍찍이로 시간 날 때마다 치우는데도 불구하고 돌아서면 원상복구 되어 있다. 청소기를 살까 했다가도 룸메의 언니, 우리 더 물건 나둘 자리 없잖아요소리에 깔끔히 포기했다. 덕분에 매일이 머리카락과의 전쟁이다. 욕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샤워할 때마다 한 움큼씩 빠지는 머리카락 덕에 배수구가 늘 고생이다. 벌써 세 번이나 막혔었다. 처음에는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뭐가 잘못 되었는지도 모르고 룸메랑 둘이서 어떡해, 물이 안 빠져 ㅠ ㅠ를 연발했다. 두 번째부터는 그래도 담담하게 경비 아저씨를 부르고 한소리 들으며 뚫어달라고 부탁한다. 이젠 그만 혼날 때도 된 것 같은데 매일 샤워할 때마다 조마조마하다. 우리 잘 치우고 살자, 룸메야 !

 

(머리카락도 제때제때 버려야 하는데...)

 그리고 쓰레기 버리기’. 종량제 봉투를 그때그때 사는 우리는 가끔 쓰레기통이 가득 찼다는 것을 깜빡하고 종량제 봉투를 안 사오고 들어온다. 그렇게 방치된 쓰레기통이 하나둘 생겨나고... 이건 거의 2주를 버리지 않고 둔 것 같다. 기숙사 정문 앞에 바로 쓰레기장이 있어서 들고 내려가기만 하면 되는데 이게 뭐라고 자꾸 미루게 되나. 성실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집에 있으면 알아서 비워지고 깨끗한 새 쓰레기봉투가 씌어있을 텐데. 집에서 내가 누린 것 중에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구나 새삼스레 깨달을 수 있었다. 정말이지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은 구석이 없다.

 

(오늘은 정말이지 꼭 종량제 봉투를 사올거다)

 다음으로는 요리’. 내가 요리에 소질이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집에서도 엄마가 차려주시는 밥만 먹어봤지 스스로 차려본 적이 없었다. 해봤자 계란프라이와 라면 정도? 계란프라이 마저 엄마가 해주시는 것과 맛이 다르다. 아직 그 이유는 모르겠다. 그 정도 요리 실력을 가진 내가 유일하게 해먹을 수 있는 건 볶음밥. 프라이팬에 재료 다 넣어서 익히기만 하면 된다. 매일 해먹었더니 조금 물리기 시작했다. 매번 다른 반찬, 다른 메뉴로 밥을 챙겨주신 엄마가 대단해보였다. 집밥이 너무 먹고 싶다. 덕분에 택배가 올 때면 너무 설렌다. 옷이나 화장품이 아닌 집에서 보낸 반찬이 담긴 아이스박스 택배가 왔을 때 말이다. 페이스북에서 관련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자취생과 통학생의 차이점을 비교하는 영상이었는데 자취생의 생활에 그렇게 공감할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집에서는 그저 그렇던 김치가 여기서는 너무 반갑게 느껴지고, 좋아하지도 않았던 콩나물 반찬에 향수를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식사의 팔할은 밥버거와 컵라면이다 ㅎㅎ)

 

 그렇게 요리를 했으면 설거지. 밥 먹을 때마다 꼬박꼬박 설거지를 하면 되는데 그게 말처럼 잘 안 된다. 밥을 다 먹고 난 다음에는 조금 이따 해야지 하고 미루게 된다. 그릇이 두 개밖에 없는 탓에 설거지를 제때 안하면 다음 식사 때 쓸 수 있는 그릇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거지를 미루는 나 자신에 감탄을 아낄 수가 없다. 사실 설거지라는 게 그릇만 씻으면 되는게 아니라 요리하는데 쓴 프라이팬이랑 국자랑 수저랑... 이렇다 보니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매번 대신 설거지해주는 로봇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가끔 엄마가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하셨는지 이제 공감이 간다. 그래도 자취 좀 했다고 엄마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나보다.

 

(이제 쓸 그릇이 없네...)

 

<사랑하는>

 이런 기회를 주신 부모님께 먼저 감사드리고 싶다. 만약 기숙사에서 생활해보지 못 했다면, 가족의 소중함,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안락함과 그리움,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 홀로 서기를 하는 법조차 모르는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이제는 혼자 제법 알아서 밥을 챙겨 먹고, 방을 가꾸고, 집안일을 한다. 타지에 나와 살아서 그런지 이젠 돈을 내고 야채를 사먹으며, 밖에서 노는 것보단 기숙사에서 쉬는 게 더 좋을 때가 있다. 변화한다. 나는 서울에서, 대학에서, 기숙사에서 이렇게 성장하고 있다.

 사실, 소홀하기 싫은 상대에게 소홀하기가 더 쉬운 법이다. 그렇지 않은 상대는 소홀하기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에게, 소중한 것들에게 쉽사리 가벼워진다. 뜨거운 것들만이 식을 수 있다. 사랑 받고 살았으니 지금 외로울 수 있는 것이다. 부모님의 부재를 느끼고, 그들의 소중함과 그동안의 노력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 필연적인 소홀함이 부모와 아이 사이에 있다고들 하지만 오늘은 다정하고 싶다. 수업 끝나고 집에 전화라도 해야지.

 

(답답할 때면 바깥바람을 쐐러 옥상으로 올라온다. 어쩌면 가장 혼자있기 힘든 기숙사에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조용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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