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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퇴사, 그 쓸쓸함에 대하여
번호 : 221 등록일 : 2015-11-27 조회수 : 21882

퇴사, 그 쓸쓸함에 대하여

한그림

 

이사를 한다. 애석한 일이다. 내 본의와 상관없이 난 더 이상 기숙사에 살지 못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처음 있는 일도 아니기 때문에 무덤덤하다. 이제 와서 어쩔 수 있는 일도 아닐뿐더러, 원래 무심한 성격이기도 하고. 받아들였다. 인생을 살면서 닥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은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것이 내 지론이다.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단 이해는 제쳐두고 상황을 받아들인 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나는 내게 닥치는 모든 문제에 적용하고 있다. 그렇게 일단 내가 퇴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은 받아들였으나, 뭐라 말할 수 없는 쓸쓸함만은 지울 수가 없다. 퇴사의 퇴자는 물러날 퇴자라, 물러난다는 점잖은 표현을 쓰긴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쫓겨난다고 해석하는 편이 옳은 경우도 있다. 지금의 나처럼. 쫓겨난다는 말은, 어찌 보면 세상의 매정함이 어린 말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건 간에 기숙사측에서는 기숙사에 입사하는 방법에 대해 충분히 공지를 하였고 공지한 바대로 행한 것이기 때문에, 쫓겨나는 것도 내 탓이다. 무슨 말을 하겠는가. 미련은 없다. 기숙사에 들어가는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한 학기 내내 몸과 마음을 바쳐 학업에 매진하거나, 혹은 미진했던 한 학기를 추가 모집일에 가서 밤을 지새움으로써 대체하거나. 내게 기회는 충분히 주어졌다. 내가 조금의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다면 나는 이 엄동설한에 길바닥에 나앉는 상황은 모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충분히 할 수 있었던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것들에 대한 책임은 순전히 나한테 있다. 어른이라는 것이 그러한 것이 아니겠는가.

일단 잠깐 수레를 빌려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나왔다. 행선지 따위는 없다. 설마 기숙사를 떨어지겠느냐는 안일한 생각으로 겨울방학을 보냈다. 그렇게 겨울방학은 끝났고, 나는 기숙사에 살 권리를 얻지 못 했으며, 겨울의 끝자락에, 학기는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이번 학기에 나의 학교생활이 얼마나 험난할는지 가늠하게 하는 일이 발생했다. 퇴사시간이 되었음에도 룸메이트가 보이지 않아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방을 나섰다. 애석하게도 별로 유대관계가 깊지 않아 미련은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두 어 달 같은 방을 썼는데 이렇게나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시간이 임박했음에도 룸메이트가 지금 보이지 않는 것은,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이 방에 살아갈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는 얼굴도 몇 번 못 본 룸메와 얼굴도 마주치지 못한 채 이별을 하면서, 이별의 아쉬움보다는 나를 제치고 기숙사에 입사했을 것이라는, 룸메에 대한 열등감만이 내 가슴 속에 맴돌았다.

그렇게 일단 짐을 싸서 나오기는 했지만, 갈 곳은 없었다. 내 등 뒤에는 바퀴가 두 개 달린 손수레가 매달려있었고,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가에 대한 고민보다는 손수레에 작용하는 힘에 대한 자유 물체도를 상상하고 있었다. 어느 교수님인가 말씀하셨다. 기계공학도라면 언제 어느 물체를 보더라도 자유 물체도를 그릴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런 말을 떠올리며 나도 이젠 어엿한 기계공학도가 되었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정처 없이 걷고 있었다. 어쨌건 마땅한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선배 방에 당분간 짐을 맡기고 살 곳을 알아보던지, 인천에 계시는 할머니 댁에 들어가야 했는데, 아무리 수인로가 학교 앞에서 할머니 댁까지 쭉 뻗어있다 한들 손수레를 끌고 할머니 댁까지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수레도 핸드폰을 맡기고 빌린 물건이 아니었는가. 말하자면, 정말 아무런 대책도 계획도 생각도 없었다. 그냥 하늘이 맑고 바람이 차다는 생각만 들었다.

어디선가 쇠 냄새가 났다. 손수레의 손잡이에서 나는 냄새인 것 같은데, 아마 장갑조차 착용되지 못한 채 손수레를 끄는데 이용되고 있는 나의 손에도 똑같은 냄새가 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냄새를 최근에 맡아본 것이 언제인가 생각해보니, 그렇게 손수레를 끌고 다닌 것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라는 것도 기억났다. 1년 전 지금 끌고 있는 손수레와 아주 비슷한 물건을 끌고 다니며 기숙사에 입사했던 생각이 난다. 그렇다. 그 때의 나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이사를 하고 있었다. 정말 고마운 친구들이라, 덕분에 추운 날이었음에도 즐겁게 이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것이었다. 그 날의 나와 오늘의 나의 차이점. 그 날은 입사를 하는 날이었고, 친구들이 있었지만, 오늘은 퇴사를 하는 날이었고, 친구들도 없었다. 어찌하겠는가. 입학한지 3년차, 다들 반강제 휴학을 하고 돌아오기 힘든 곳으로 떠나간 지 오래다. 나 홀로 남았다. 나를 도와줄 친구들이 있었다면 나와 손수레의 자유물체도 따위는 생각도 안 했을 거다. 그래도 자유 물체도를 그리며 입사를 하는 건 나름 재밌는 일일 것이다. 어차피 내 머릿속의 8할은 다음 날 아무리 생각을 해보려 하여도 생각나지 않는 별 볼일 헛된 공상으로 가득 차있고, 나는 그것을 굉장히 즐기기 때문에, 혼자서 뭘 한다는 것 자체에 외로워하거나 노여워하지 않는다.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라는 게, 이제와 생각해보면 부모님이 나에게 가르쳐주신 많은 것들 중에 가장 중요한 키워드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건 중요한 건 내가 머릿속으로 자유 물체도를 그리면서 하는 일이 입사가 아니라 퇴사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쓸쓸함을 제외하면 대단히 담담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초연할 수 있는 것도 나의 장점이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도 들었다. 혹은 나 자신에 내 스스로가 별로 관심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느 길바닥에서 비명횡사할지조차 무관심한 것은 아닐까. 어쩌면 무사태평이라는 말 자체에 무관심이라는 말이 암시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관심이 없기에 맘 편히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니겠는가. 안중근 의사께서는 국가안위 노심초사라는 말을 남기셨는데, 말 그대로 국가의 안위에 대한 때문에 한시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다는 얘기다. 비단 국가의 안위가 아니더라도, 관심이 있다면 어찌 평온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다. 정말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이모저모 신경 쓰이는 점이 한 두 개가 아닐 터이다. 나의 이사는 별스럽게도 내 지난날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의 지난날이란 어떠했는가. 박찬욱 감독의 희대의 역작 올드보이에서 주인공 오대수는 자신의 이름이 오늘만 대충 수습하자라는 뜻이라며 떠벌리는데, 영화 자체도 그렇고 그 대사도 나에겐 굉장히 감명 깊게 와 닿았기에, 그 말을 나름 내 삶의 신조로 삼고 있었는데, 어쩌면 굉장히 나는 나 스스로에 대해 대단히 무관심하고 무책임하게 살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회 혹은 반성으로는 이어지진 않았는데, 어쨌건 중요한 건 행복하게 사는 거지, 대단하게 사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시민으로서의 삶을 추구한다면, 오늘만 대충 수습하는 게 나쁠 것이 뭐가 있겠느냐는 얘기다. 그 날 그 날 즐거우면 무얼 더 바랄 것이 있으랴. 오늘 불행했다면, 내일은 행복하길 바랄 뿐이다. 나는 훌륭하게 사는 게 아니라 행복하게 사는 것이 목표니 말이다. 평범하게 사는 게 어렵다지만, 그 정도만 해도 내 자신에게 만족하지 않겠는가 싶다.

그렇게, 나는 기숙사를 퇴사하면서 뭐라 말 할 수 없는 이상한 느낌, 이상한 쓸쓸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는 날씨가 추워서도, 갈 곳이 없어서도, 집이 무거워서도 아닌 그 동안 꾸준히 구축해온 나의 인생관 자체에 의심을 품게 되었기 때문이었으며, 그 의심이 해소되자 그 정체모를 이상한 느낌은 바람에 날린 듯 흩어졌다, 이것이 내가 퇴사하는 동안 느낀 감정들이었다. 나는 홀가분해진 채, 일단 되는대로 행동하기로 했다. 현재 가능한 가장 쉬운 방법으로. 어쨌건 간에 오늘을 대충이라도 수습하지 못하면 내일로 넘어갈 수가 없다. 임시방편으로 선배 집에 짐을 맡겼다. 당장 갈 곳은 없다. 오늘 밤은 일단 할머니 댁으로 간다. 어쨌건 당장 몸 누일 곳은 필요하니깐. 앞으로의 일은 이제 생각해보면 된다. 어떻게든 된다.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니깐. 최악의 경우 할머니 댁에서 열심히 전철을 타고 다니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건 또 어떤가. 죽는 일도 아니다. 그러한 와중에도 어딘가 즐거움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그런 걸 찾아다니면, 어찌 인생이 길다 할 수 있겠는가.

20132월의 끝자락에서

 

이 이후의 일을 간략하게 말하자면, 나는 결국 학기가 끝날 때까지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할머니 댁에서 전철을 타고 다녀야했으며, 친구를 모두 떠나보내고 홀로 학교생활을 해야 했다. 상술했듯 삶이란 홀로 사는 것이라, 그에 대해 아쉬움이나 노여움은 없다. 다만 그 와중에 즐거움과 행복을 찾아 노력했고, 나름 잘 지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20131학기가 끝난 뒤 나 역시 반강제 휴학을 한 뒤 쉬이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으나, 어쨌건 간에 다시 돌아와 떠나보냈던 친구들과 재회하고, 이렇게 다시 기숙사에 살고 있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하다 하겠는가. 다음에 기숙사에 살지 못하게 되는 일이 다시 발생하더라도, 미련은 없다. 언제든 어디든 즐거움과 행복이 있기 때문에, 그런 별스럽지도 않은 일 때문에 노여워해야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애석하게도 혼자 퇴사하는 상황이라 당시의 사진은 없다.

지금의 내가 잘 살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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