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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인재를 위한 안식처 성균관대학교 기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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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최초의 룸메이트, 최고의 룸메이트
번호 : 220 등록일 : 2015-11-27 조회수 : 4044

   나는 경상남도 진주에서 평생을 살았다, 성균관대학교에 합격하기 전까지는. 20년 동안 부모님과 떨어져서 일주일 이상 먼 곳에서 지내본 적이 없었고, 여행도 일주일 이상 갔다온 적이 없었다. 이러한 나에게 갑자기 닥친 먼 타지에서의 기숙사 생활은 생각만해도 불안하고, 긴장되는 사건이였다. 생애 처음의 독립이라 부모님도 걱정을 많이 했고, 딸의 긴장을 풀어주고 빨리 새 생활에 쉽게 익숙해지는 것을 돕기 위해, 봉룡학사에서 제공하는 오픈하우스 프로그램에 신청했다.    오픈하우스 프로그램은 부모님과 함께 기숙사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였고, 덕분에 조금 더 빨리 익숙해지고 편하게 여기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첫 타지 생활의 시작은 순탄하지 않았다. 많이 긴장한 탓인지 생전 걸리지 않았던 위장염에 걸린 것이다. 처음 걸려본 위장염이라 어디 심하게 잘못된 건 줄 알고 무서웠고 특히 입학식 날에는 상태가 악화되어, 수십 번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느라 정신 못 차리고 끙끙 앓았다. 새로운 생활에 들어서자 말자 고통스러운 상황이 닥쳐서 서글펐고, 당분간 보지 못할 부모님께 아픈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드리고 헤어진다 생각하니 아픈 내 몸과 기숙사가 원망스러웠다. 그렇지만 만약 오픈하우스라는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시작부터 엉망이라며 혼자 비관했을 상황을 덕분에 가족의 사랑을 느끼며 무사히 겪어낼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보통 1학년에 기숙사에 입사하면 선배들과 같은 방을 쓴다고 한다. 나는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는 말도 못 걸고 괜히 어색하고 친해지지도 못하기 때문에, 앞으로 불편한 기숙사 생활이 될 것같다 예감하며 불안해했다. 드디어 개강 하루 전, 룸메가 방에 들어왔고, 바로 고개 숙여 인사했다. 몇 마디 인사를 나누다 보니, 서로 동기인 것을 알게 되었고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경상도 대구 사투리는 같은 경상도인 나에게 엄청난 친근감을 주었고 그 이후로 룸메는 가족 같은 편한 친구가 되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룸메는 오히려 내가 선배인줄 알았다고 한다. 리드선, 목베게, 빨래바구니, 북앤드, 북스탠드, 옷걸이 등 굉장히 기숙사에 익숙해 보이는 물건들을 요리조리 배치해놔서 그렇게 생각했다며, 서로 선밴 줄 알았다고 얘기하면서 즐겁게 수다를 떨었다. 아직도 처음 만나던 때가 기억에 생생하고, 룸메와의 추억을 기록하기 위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내 룸메는 평소에 나를 친절하게 챙겨 주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룸메의 친절과 배려는 1학기 도중 내 건강이 정말 안 좋았었을 때였다. 오른쪽 발목에 염좌가 있어 매일 발목 아대를 하고도 계속 넘어져 부어있고, 역류성 식도염 걸린 상태에서 심한 감기에 걸려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었다. 기분이 매우 우울했었는데 운동으로 스트레스 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친구와 즐겁게 수다 떨 수도 없는, 인생 최대의 암흑기였다고 아직도 생각한다. 이때 룸메가 정말 많이 걱정하며 챙겨주었고, 목소리가 쉬어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소곤소곤 하는 얘기도 주의 깊게 들어주어 즐겁게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감기에 정말 좋은 비타민이 있다며 챙겨주기도 했었다. 정말 고마웠었고, 첫 룸메이트를 이 친구와 하게 되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잊지 못할 해프닝이 한 번 벌어졌었다.

   룸메는 평소에 굉장히 성실하고 해야 할 일은 밤을 새서라도 해결하며, 나를 챙겨주었다. 하지만 이번 해프닝때는 드물게도 반대로, 내가 룸메를 챙겨주는 일이 일어났다. 내가 도서관에 있던 어느 날, 룸메의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룸메의 과 친구들이 오늘 내 룸메가 술을 많이 마셨으니 좀 돌봐주라며 부탁했다. 부랴부랴 기숙사로 돌아가 방문을 열어보니 ㄹ가 침대에 누워 있었고 속이 안 좋은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방 밖의 공용 화장실에서 등 두드려주기 위해 일단 문을 열어놓고, 부축해 데리고 가려고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열기 위해 방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근데 철컥철컥 하며 문이 열리지 않았다! 안에서 룸메는 안 좋은 속을 막 입으로 쏟아내기 직전이었고 문은 여전히 꽁꽁 닫혀 열리지 않았다. 어쩌지 어쩌지 하다가 할 수 없이 휴지통을 비우고 룸메 앞에 뒀고, 등을 두드려주었다. 계속해서 문을 어떻게든 열어볼려고 시도 하고 싶었으나 아직 정신 못 차린 룸메가 휴지통을 넘어뜨리는 바람에  붙잡아 주기위해 침대에서 일어날 수도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혼란에 빠져있다가 겨우 룸메가 조금 정신 차린듯해 바로 달려가 문을 두드리며 복도에 있는 사람들이 경비아저씨를 불러주기를 기다렸다. 마침 다행히 밖에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경비아저씨를 불러다 주었고, 경비아저씨는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문 고치는 기술자 한 분을 불렀고, 한 10분 뒤 기술자가 도착했다. 금방 문이 열릴거라 기대하며 쉬고 있었는데, 기술자분이 끙끙대기만 하고 문을 고치지 못하시는 것이였다. 다른 문과 달리 여간 힘든게 아니라 투덜대시며 계속 시도하다가 결국 안돼겠는지 나무문을 부수기 시작하셨다. 앓는 소리를 내시며 열심히 나무를 망치로 치셨고, 새벽이 다되가는 밤에 그 난리를  부렸다. 부서진 문을 한 번 보고, 방안에서 계속 토하는 룸메 한 번 보고 하면서 왠지 웃음이 났다. 웃긴상황은 아니지만 기숙사에 살면서 쉽게 겪지 못할 해프닝을 첫 기숙사생활에 겪었다 생각하니, 비록 정신없고 피곤했지만 앞으로 영영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룸메와 함께한 추억도 많지만, 그 외의 다른 친구들과 함께한 추억도 많다. 다들 밖에서 놀다가 1시 5분 전에 다 같이 뛰어가 통금 전에 게이트를 통과한다던가, 항상 예관 2층에서 만나 의관기숙사로 넘어가 밥을 먹는다던가, 3시를 오매불망 기다리다가 간식을 타 먹는다던가, 휴게실에서 수다를 떨며 맛있는 간식을 나눠먹기도 하고 신관 피트니트 센터에서나 기숙사 사생회 도담도담에서 배드민턴 채를 빌려 운동도 하고 시험기간엔 식당에서 밤을 새며 공부하기도 했다. 
   대학교 생활의 추억의 반이 기숙사에서 생겼다, 난생 처음 해본 기숙사생활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많은 추억을 남길 수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쭉 기숙사에서 대학교 생활을 이어나가 재미있는 4년을 보내고 싶다. 또한 이러한 즐거운 마음을 가지게 해준 봉룡학사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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