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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가족(家族)
No : 175 Date : 2013-12-13 Views : 2598

가족(家族)

 

새내기가 된 후 가장 많이 듣는 단어는 \\'가족\\'이었습니다. 근 20년을 상암동에서 나고 자란 저에게, 결코 가깝지 않은 수원에서 듣는 \\'가족\\'이란 단어는 생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우리 과는 가족 같은 과이다\\'라는 말이나, \\'동기사랑 나라사랑이니 가족처럼 지내라\\'는 선배들의 말 역시 저에게는 그저 먼 말 같았습니다.

가족이란 단어의 뜻을 풀어보자면 집 가에 겨레 족, 즉 같은 집에 모여 사는 겨레 민족을 뜻합니다. 단순히 한 집에서 지냄으로써 가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같은 겨레로 인지하고 받아들여야만 가족이 되는 것이겠지요. 그런 저에게, 성균관 대학교 내에서의 가족이 생겼습니다. 바로 1학년 1학기 때 저와 같이 방을 썼던 기숙사 룸메이트들입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과, 그것도 스무 살씩이나 먹은 남자 넷이 같은 방을 쓴다는 것은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남고 출신에 공대에 온 것도 서러운데 시커먼 남자들끼리 한 학기를 이 지내려니 한숨부터 나왔습니다. 마음만 같아서는 근처에 방을 얻거나 하숙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럴 경제적 여유도 없었을 뿐더러 학습 습관도 망가질 것 같아 선택한 기숙사 생활이었습니다.

룸메이트들의 생각도 저와 다름이 없었는지, 첫 날 우리는 어색한 웃음을 주고 받은 후 일상적인 얘기 한 마디조차 나누지 않았습니다. 욕실을 쓰는 시간이 겹치기라도 하면 속으로 나직하게 욕을 하기도 했고, 과제에 지쳐 눈을 붙이려는데 문자 치는 소리가 나면 머리 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다음 학기 독립!\\'을 외치곤 했습니다. 게다가 다들 청소는 어찌나 게을리 하던지 평소 깔끔한 성격도 아닌 저가 느끼기에도 방은 더러워졌습니다. 룸메나 저나 스무살 먹도록 엄마가 치워주는 방에서 먹고 자다 온 것이 분명했습니다.

네 명 중 2명은 같은 동갑이었고 한 명은 한 살이 많은 형이었는데, 아무래도 나이가 많다보니 그 형을 대하기가 가장 어려웠습니다. 동갑내기들에게는 충전기 따위를 빌리기도 했지만 형과는 정말 말 한 마디 건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의 한 마디에 저희 넷은 처음으로 뭉치게 되었습니다.

"니네 닭 좋아하냐?"형의 그 한 마디에 저희 넷은 언제 서먹했냐는 듯 돈 만원씩을 들고 뭉쳤고, 머리 검은 남자 넷이 모여 앉아 치킨 2마리를 그 자리에서 해치웠습니다. 치킨을 먹으면서 학점 얘기, 그리고 92년생 형의 재수 얘기를 하며 시간 가는 줄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서로의 첫 인상 얘기도 하고 교양 수업을 같이 듣는 예쁜 여학생 얘기도 하면서, 원래 그러던 사이였던 것처럼 수다를 떨었습니다.

평소 좋게 말하면 어른스럽다, 좋지 않게 말하면 애늙은이 같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던 저는 그 후로 형과 급속도로 친해졌습니다. 집안이 어려워 등록금을 직접 마련했다는 형의 말에, 자취를 시켜주지 않는 부모님 탓을 했던 제가 부끄러워지기도 했습니다. 저보다 나이 많은 형답게 이런 저런 조언도 많이 해주었고, 가끔 룸메이트들 몰래 맛있는 걸 따로 사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제 인생이 바뀌게 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형이 한온이라는 대외활동을 추천해준 것입니다. 한온은 우리나라 학생들이 모여 외국에 우리나라를 알리는 뜻 깊은 대외활동이었습니다. 공대다 보니 빡빡한 수업 스케줄에 망설여졌지만, 형의 말을 듣고 나니 한온이라는 동아리에 더욱 마음이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지금 돌아보면 대학 생활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한온이라는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영어로 소개말을 작성하고 페이스북이나 인터넷에 한온을 홍보하는 등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시작하면서, 저는 왜 형이 저에게 한온을 추천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단순히 모여 술을 먹고 웃고 떠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의기를 투합하고 다른 나라에 우리나라의 문화를 알리는 활동은 저로 하여금 한국인으로써, 그리고 성균관대 학생으로써 자부심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형과 더 친해진 것은 말 할 것도 없었고, 소심한 성격은 점점 대범하게 변해갔습니다.

그렇게 준비 과정 끝에 처음으로 맞았던 한온 파티. 제 고등학교 친구들까지 참석하여 유쾌하고 뜻 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간단한 맥주와 안주가 준비되어 있는 자리에서 외국인 학생들과 유대를 나누고, 한국에 대한 좋은 인식을 심어주었습니다. 만약 형을 만나지 못했다면 저는 여느 대학생들과 다름 없는 평범한 대학 생활을 보냈을 것입니다. 저는 맥주에 취해 형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건넸습니다. 형 또한 믿고 따라와줘서 고맙다며, 저에게 뜻밖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너랑은 정말 가족 같아."그러고 보니 저는 형과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온 활동을 하고, 또 기숙사로 돌아와서도 늘 함께였습니다. 저를 기준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던 습관은 어느새 타인을 향해 뻗어 있었고, 작은 범위 안에 갇혀 있던 시야도 대외활동으로 인해 넓어졌습니다. 이 모든 것이 너희 혹시 닭 좋아하냐던, 어린 동생들에게 말을 건네기 쑥스러웠을 형의 용기로 이루어진 결과였습니다.

만약 다음 해에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서 한 살 어린 동생과 방을 쓰게 된다면, 형이 저에게 그랬듯이 새로운 세계를 알려주고 싶습니다. 세상은 너가 느끼고 본 것보다 훨씬 더 넓고, 그 세상으로 인해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도 바꿀 수 있음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형이 저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같은 집에 살고, 또 같은 겨레를 느낄 수 있었던 형과의 한 학기. 성균관대학교 기숙사가 저에게 선사해준 기회이자 선물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받았던 것들을 꼭, 돌려주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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