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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너는 내 운명 ‘봉룡학사’
No : 168 Date : 2013-12-13 Views : 2257

너는 내 운명 ‘봉룡학사’

 

나는 기숙사라는 주거형태와는 매우 끈질긴 인연을 가지고 있다. 지금 내 나이, 22살 여태 22년 인생살이 동안 무려 5년을 기숙사와 함께 지내왔다. 바야흐로 그 시작은 2007년,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청송군 진보이라는 시골에서 자라 그곳의 한 군데밖에 없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도시로 나가야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에 옆 도시 안동에 위치한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학교에는 나와 같은 여러 시골에서 온 학생들을 위해 기숙사가 있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입학과 동시에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하여 고등학교 3년을 기숙사에서 울고 웃으며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 어느덧 2010년이 되어 졸업식을 하고, 나는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우리학교에도 기숙사가 있었다. 그것도 무지하게 크고 위엄 있는. 나는 당연히 기숙사에 입사신청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처음으로 들어가게 된 기숙사 지관. 나에게 있어 지관 기숙사의 첫인상은 매우 친숙하였다. 바로 고등학교 때 기숙사와 매우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뭔가 그 편안한 느낌을 주는 녹색계열로 치장된 지관. 몇몇 이견을 가진 학생들은 칙칙하다, 촌스럽다는 둥 했지만 나에게만큼은 매우 만족스러운 첫 만남이었다. 호실은 502호, 룸메이트06학번 형님. 10학번인 나는 꽤나 차이가 나는 형님과 함께 기숙사생활을 한다는 것에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처음에는 뭔가 상당히 어려웠다. 하지만, 이 형님은 매우 자유로운 분이었다. 그 덕에 금방 친해졌고, 나의 기숙사에서의 첫 학기는 매우 수월하게 지나갔다. 2학기도 지관에서 보내게 되었다. 이번엔 902호 층이 높아지니 불편한 점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훌륭한 점은 바로 위 층 10층에 있는 옥상테라스가 장관이었다. 시험공부를 하다가, 밀린 과제를 몰아치다가 바람 좀 쐬고 머리도 식힐 겸 이곳에 올라오면 가슴이 뚫리는 기분이 든다. 이곳에서의 추억은 많았다. 집에서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고 소리 없이 운적도 있고, 해가 질 때에 올라가서 보는 노을은 정말 장관이었고 친구와 함께 담배 한 대씩 피우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그렇게 지관에서 1학년을 보내며 인상 깊은 첫 대학생활 1년을 지내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와는 다른 생활을 통해 배운 점도 많았다. 기숙사에서 물론 밥도 주고, 잠도 자고 하지만 결국은 홀로서기 라는 것. 이에 적응하지 못해서 다시 통학을 하게 되는 선후배동기들도 많이 봤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생활이 너무 좋아서 겨울방학 때에는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입사신청을 하였다.

이번엔 기숙사 인관이었다. 4인 1실이라는 어떻게 보면 불편할 것 같기도 한 생활관에 입사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여러 곳에서 살아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과는 반대로 오히려 4명이서 부대끼며 친하게 지내면 학교생활과는 또 다른 하나의 기숙사만의 삶이 펼쳐질 것 같아서 인관으로 가게 되었다. 물론, 룸메이트들과의 첫 만남은 매우 어색했다. 다들 선배들이었고, 4명이 한 방을 쓰고 2층 침대가 2개가 있기 때문에, 자리배정을 하면서 서로 알아가게 되었고, 어색하면서도 시끌벅적한 4인 1실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조금 불편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지내면 지낼수록 가격이 더 저렴하다고 안 좋은 것이 아니었다. 방도 더 넓고, 책상도 넓고, 창문이 지관에 비해 매우 커서 환기도 잘될뿐더러, 햇빛이 잘 들어와서 매일 아침 기분이 좋았다. 인관은 또 기가 막힌 곳에 위치해있어서, 학교 안이나 밖이나 어디를 이동하든 요지가 되어 매우 편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4명이서 방을 써서 너무 불편하다, 정신병원 같다?!(색깔 때문에) 라는 의견까지 내기도 했었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정말 계속 생활하면 할수록 인관의 매력을 더욱 느끼게 되었고, 다음 학기에도 남은 학기에도 계속 인관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2011년 2학기, 나의 2학년 2학기 까지도 인관에서 살게 되었다. 이 때에는 동아리 동기들 모두 -약 10명- 함께 인관에서 살게 되었다. 다 같이 지내다 보니 그만큼 더 재미도 있었고, 할 수 있는 것도 많았다. 시간만 나면 휴게실에 모여 사담을 나누고, 맛있는 야식도 시켜먹고 몰래 가끔씩 맥주도 하나씩 챙겨와서 TV를 보면서 같이 먹고, 지금도 나는 누군가 돌려놓은 건조기 냄새에 행복해하면서 그 친근한 인관 휴게실에서 껄껄 웃어대던 추억이 가장 생각난다. 그렇게 4학기까지 마치고, 입대하게 되었는데 좀 비약해서 말하자면 군대도 기숙사 생활과 비슷했다. 또래의 남자들과 같이 밥먹고 자고 일과하고 생활을 다 같이 하는 것이다. 임무도 분담하고, 필요한 것은 공유하고, 그냥 모든 일상을 같이하였다. 오랜 기숙사 생활에 단련된 나는 당연하게도 군대사회에의 적응이 매우 빨랐고, 기숙사에서의 추억 또한 많이 생각났었다. 또 어느덧 전역을 하고, 같이 군대에 갔던, 같이 기숙사에 살았었던 학교 동기들도 다 같이 전역하여 만나서 술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면, 항상 같은 래퍼토리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기숙사에서 생활한 이야기, 기숙사에서 생긴 에피소드 등등 매일 만날 때 마다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하지만 그 만큼 기억에 많이 남았고 이야기 할때 마다 그때가 떠올라 다들 박장대소하며 그때를 기억해낸다. 지금의 나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약 3개월 후면 2년 만에 다시 학교로 복귀하게 된다. 오랜만에 다시 학교를 다닌다는 설렘도 당연히 있지만, 그 보다 기대되는 것은 바로 기숙사에서의 생활이다. 나는 복학하게 되면 당연히 기숙사에 들어 갈 것이다. 왜냐하면 이 때까지 쌓아온 경험을 토대로 보자면 그곳에서 쌓은 탑과 같은 추억들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들이기 때문이다. 교훈이 되고, 매우 소중한 시간들이기에 앞으로 기숙사에서의 추억과 배움은 더욱 더 높은 탑이 되어 영원히 간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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