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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ating Point
No : 244 Date : 2017-11-14 Views : 1644

 나는 지금 기숙사 침대에 누워 있다.
 밤도 아니고, 아침도 아니다. 사실 그런 건 그다지 상관없다. 내일은 일요일이고, 시험도 다 끝났고, 과제 마감 기한도 한참 남았다. 누워 있지 않을 이유가 없다. 누워 있을 이유 역시 없지만.
 주말의 기숙사가 좋다. 주일 간 학교를 메우던 사람들은 다 어딘가로 사라진다. 복도는 고요하고, 식당을 찾는 사람도 평일만 못하다. 다들 집에 가는 걸까? 가라앉은 분위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어쩐지 나만 이곳에서 부표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파도를 타고 떠도는 해초처럼.
 기숙사를 집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젠 익숙해졌다. 고등학교 때도 기숙사가 있었는데, 많은 고등학교 기숙사가 그렇듯 몸만 편한 수용소쯤 되는 곳이었다. 그때 기숙사에 사는 친구들은 결코 기숙사를 집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 애들에게 기숙사는 그저 공부를 위해 머무르는 공간이었고, 거기서 시간 대부분을 보내건 어쩌건 돌아갈 집은 따로 있었다.
 나한테도 물론 본가는 존재한다. 그러나 그곳은 이미 돌아가는 곳이 아니라 찾아가는 곳이다. 그 생각이 들었던 건 마지막으로 본가에 다녀왔을 때였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즉흥적으로 고향인 대구로 내려가는 무궁화 표를 끊었다. 기차 창 너머로 가을이 흘러갔다. 창밖을 보며 나중 일 생각을 했다. 아마 나는 이번 겨울 방학부터 방학에도 계속 학교에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대구에서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으니까. 서울에서 열리는 캠프를 신청할 수도 있고, 친구에게 아르바이트를 넘겨받을 수도 있고, 또 동아리 활동도 할 수 있다. 저번 여름 방학 땐 팀으로 나가는 대회 준비를 했는데, 나 혼자 동떨어진 곳에 살아서 이만저만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방학에 무언갈 하고 싶다면 학교에 남는 건 필수적인 성싶었다. 하다못해 그냥 도서관에 박혀 공부하더라도 집보단 학교가 나으니까.
 동시에, 그렇다면 나는 이제 본가에 살 일이 정말 영원히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갔다. 학기 중에는 당연히 수원에 있을 것이고, 방학 때도 이곳에 살 것이고, 졸업하면 직장이 있는 곳에 새롭게 살 곳을 구하겠지. 그 당연한 사실은 어쩐지 아주 낯설게 느껴졌다. 그때껏 무의식중으로 기숙사는 어떠한 목적을 위해 잠깐 머무르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결국 돌아갈 곳은 대구라고, 어디를 가건 어릴 적 추억이 있는 동네라고.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이제 영영 거기에 찾아갈지언정 살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일주일 아니 한 달이라도 맘 편히 머무를 수는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동네 친구들과 동네에 새로 생긴 식당의 가성비에 관해 토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일종의 비일상으로 분류될 따름이다.
 그렇구나. 나는 이제 타지인이구나. 어떠한 이유로건 원래 살던 곳과 다른 곳에 사는 게 그렇게 특별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꽤 그 사실이 어색했다. 영영 대구에 살지 않는다면, 나는 대구 사람이 아니라 수원 사람이라고 불려야 하는 걸까? 글쎄, 그러기엔 그쪽도 거북하다. 내가 아는 수원이라곤 학교뿐이니까. 이럭저럭 1년을 보냈으니 학교나 학교 근처에 대해서라면 나름대로 이야깃거리가 있지만 ㅡ 저물녘의 일월저수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값싸게 괜찮은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가끔 동아리방 앞에서 얼쩡거리는 고양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하지만 이 도시, 더 나아가 경기/서울권 자체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는 느낌이다. 바로 한 달 전만 해도 버스를 내릴 때 교통카드를 찍지 않고 내렸다. 대구는 환승할 때 말고는 교통카드를 안 찍고 내리는데, 몇 년간 버스로 통학하던 시절에 들인 습관이 아직 배어 있어 그렇다. 학원에서 가르치는 아이들이 내 사투리를 듣고 신기하다고 키득대는 건 또 어떻고.
 물론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점차 이곳에도 익숙해질 것이다. 서울살이만 몇 년을 한 대구 출신 선배는 자기는 서울사람에 가깝다며 서울 지리를 줄줄 읊었고, 역시나 수원살이만 몇 년째인 부산 출신 선배는 완벽한 서울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아직은 그 정도까진 못 되는 것 같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수원, 기숙사에서의 삶이 그다지 외롭다거나, 힘들다거나 하지는 않다. 기숙사에서의 삶은 오히려 본가에서 지낼 때보다 무탈히 흘러간다. 정기적으로 방을 안 치운다는 잔소리를 들을 필요도 없고, 뭔가 하고 있는데 불쑥 들어와서 쓸데없는 말을 해대는 사람도 없다. 서로 어떻게 살든 그다지 관심 없는 룸메이트가 자는지 안 자는지 대충 보고 불이나 제때 끄면 그만이다. 평화롭게 하고 싶은 공부나 하는 만족스러운 일상. 과거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도 딱히 없다. 다만 할 일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는 이런 오후만큼은, 가만히 누워서 시간만 죽이는 이런 주말만큼은 괜히 혼자 붕 뜬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떠다니는 점처럼.
 Floating point. 컴퓨터공학에서 floating point란 부동소수점을 일컫는 말이다. 소수를 표현하기 위해 메모리 공간에 부호/지수/가수를 각각 저장하는데, 이때 소수점의 위치는 지수에 따라 달라진다. 이처럼 위치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의미에서 부동소수점이라고 한다. 위치가 가변적이기 때문에, 고정소수점보다 더 넓은 범위의 숫자를 나타낼 수 있다.
 내가 성대를 붙은 후 디지스트 원서를 쓸까 말까 고민하다가 끝내 쓰지 않은 것도, 대구에 살던 친구들이 굳이 경북대가 아니라 비슷한 성적대의 인서울을 갔던 것도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서였다. 부동소수점만이 나타낼 수 있는 숫자가 있듯이. 이방인이기에 볼 수 있는 것도 있으니, 이런 싱숭생숭함 정도는 감수해야 할 일이겠지. 언젠가, 이곳의 중력이 내 마음을 붙들 정도로 충분히 강해질 때까지.
 그래도 아예 떠밀려 날아가 확 오버플로가 나버리지 않는 건 그나마 기숙사 덕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 누울 자리 하나만큼은 언제나 마련되어 있는 곳. 돈이 없어서 엄마한테 전화하는 게 망설여질 때도 미리 신청해놓은 식권으로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곳. 모든 것에 소외당하더라도 돌아갈 수 있는 곳... 집이란 그런 곳이니까.
 창 너머로 오후의 햇빛이 일렁인다. 아, 바람 소리에 침대에서 부스스 일어난다. 바람에 은행잎들이 후루룩 날린다. 산학관 앞을 걷는 강아지와 어린애와 그 부모를 잠깐 멍하니 쳐다본다. 수원에서의 추억이 한 가지 더 새겨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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