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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평의 공간
No : 240 Date : 2016-11-28 Views : 2826

4.5평의 공간
  
 유난히 더웠던 이번 여름. 그 뜨거움에 지쳐 있다가 약간의 서늘해짐에 익숙해지려는 찰나, 갑자기 코끝을 시리게 스치는 찬바람을 느끼는 순간이 오면 그때서야 알아챈다. 올 해도 지나고 있구나,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일 년의 끝자락에 나는 또 이렇게 서 있구나.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이 시기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감성타임이 있다. 파릇파릇 하던 나뭇잎들이 노릇하게 익고 울긋불긋 가을빛으로 변하더니 이내 바싹 말라버리는 이 쏜살같은 시간의 흐름에 이내 씁쓸해진다. 그렇게 가을도 아닌 겨울도 아닌 '가울' 이라 부르고픈 이 계절을 이 학교에서 세 번째 맞이한다.
그리고 입학 후 처음으로 기숙사가 아닌 곳에서 지내는 중이다.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생각나는 단어가 있다.  '추억'
 
 '추억' 이라는 단어는 시간이라는 바람에 훅 날아갈 듯하면서도 그러기엔 묵직한 무언가가 있다. 또 무엇이라 말로 설명하기에는 애매한데 '기억'보다는 그 느낌과 감정이 훨씬 더 선명하다. 이런 추억은 유일하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시간여행이다. 누구나 추억이 있고, 그런 추억을 만들어준 공간들이 있다. 그래서 팍팍한 현실 삶에 치여 살더라도 추억이 담긴 공간이든 물건을 접하게 되면 다들 그렇게 그 때의 시간으로 남몰래 가버리나 보다.
'추억의 공간', '추억의 음식', '추억 여행', 이런 문구부터 시작해서, 응답하라 시리즈, 페이스북의 몇 년 전 오늘, 옛날 노래들을 리메이크 하는 음악방송, 카페나 음식점도 몇 년 전 그때 그 가격.. 등등 현재를 살짝 정지시키고 과거로 돌아가보는 것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추억이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고작 스무 두 살이지만 그럼에도 대학교 입학 후 2년간의 모습들은 하나로 한껏 묶어서 추억덩어리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아련함이 묻어난다. 그리고 그 추억들이 담겨있는 공간의 8할은 학교이고, 그 중의 또 반 정도가 기숙사 생활인 것 같다.
그 추억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꺼내서 살펴보려 한다.
 
먼저 아직은 제곱미터라는 표현보다 평방이라는 표현이 더 익숙한 나에게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했던 4.5평의 공간에는 많은 것들이 남아있다.
 
떨리는 마음으로 첫 기숙사 열쇠를 받고서 룸메이트가 누구일까 기다리며 설레어 했던 순간,
새내기 생활을 즐기다 술에 찌들어 들어와서 침대에 널브러진 모습,
시험기간을 맞이하며 밤 새 불을 켜두고 스탠드 아래 꾸벅꾸벅 졸던 모습들,
좋아하는 사람과 밤늦게 통화하던 그런 간질거림,
환절기 때 무자비하게 찾아온 몸살감기에 끙끙대며 울다가 잠들어 버린 아픔이,
친구랑 휴게실에서 치킨을 시키고서 수다 떨며 먹은 스노우 치즈의 달달함이,
막 학기를 보내는 룸메이트 언니의 취업전선을 지켜보며 같이 떨리고 또 기뻐했던 감정들이,
매번 빨래를 하려면 일층까지 가야 했던 귀찮음이,
공강 때 잠깐 눈 붙이다가 알람도 못 듣고 자체휴강 해버린 자유로움이,
한 겨울 영하의 날씨보다도 더 차가웠던 첫 이별의 슬픔이.
 
가랑비에 옷 젖듯이 특정 공간에 나의 일부가 스며드는 것이 참 좋다.
마지막 학기를 보낼 때는 또 어떤 느낌이 들까. 어떤 생각들이 날 찾아올까.
 
4.5 평의 공간 이외에도 봉룡학사 곳곳에는 추억들이 아롱아롱 묻어난다. 휴학생이라 어쩔 수 없이 어렴풋한 기억에 의존하여 회상의 문을 열고 기숙사 이곳 저곳을 돌아다녀 본다.
 
기숙사 입구에는 통금시간에 행여나 늦을까 부랴부랴 뛰어오던 모습이 남아있고,
생각 없이 계단을 내려오다 당황해서 발걸음을 돌린 7층과 8층 사이 계단에는 누군가의 슬픈 울음소리가 서려있고,
식당에는 아침마다 한식을 배식 받을 지 빵식을 배식 받을 지 머릿속에서 50만 번은 족히 고민하는 귀여운 변덕이 남아있고,
택배 함에는 택배 오는 날 입 꼬리가 귀에까지 걸려 싱글벙글 대며 찾으러 가던 흥얼거리는 모습이 여전이 눈에 선하다.
또 취미 강좌로 들었던 발레수업을 떠올리면 그 기억은 여전히 내 허벅지 안쪽을 얼얼하게 하고
관리실 문턱을 보면 기숙사 입,퇴사 알바를 할 때 열쇠 박스를 옮기던 곤혹함 역시 생생히 떠오른다.
입사나 퇴사하는 날이면 혼자 씩씩하게 이사하고는 부모님께 칭찬받으려고 전화해서 쫑알쫑알 대며 만연 막둥이 티를 내던 순간들,
토익 시험 보러 가는 길에 안 그래도 지각인데 연필을 안 챙긴 나를 위해 급히 경비원 아저씨께서 마련해주신 깔끔하게 깎여진 연필 세 자루의 따스함까지.
 
물론 좋았던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6인 3실을 썼을 때, 방에 있는 화장실 두 곳 모두 막혀 매번 로비 층까지 왔다 갔다 했던 기억,
퇴사 전날까지 술 마시다 퇴사 당일, 10시에 일어나 부랴부랴 짐을 싸고서는 카트도 못 빌리고 4층에서 1층까지 계단으로 짐을 다 옮겼던 기억,
기숙사 아침밥을 챙겨먹기에는 잠이 더 소중했던 나. 속으로 '배식시간이 안정해졌으면..' 하고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기숙사 추가 입사를 한다고 하루 전부터 밤새도록 의자에 앉아서 밤을 샜던 열다섯 시간은 정말 잊지 못할 것이다.
 
 
 이 모든 추억 하나하나가 모래알을 한 줌 집어 올렸다 털어내고 나서 손바닥에 남아있는 것처럼 반짝거린다. 그리고 이 추억들은 나를 따라 나오지 못한 채 그 곳에 남아있는 것만 같다.
기숙사를 나와서 지내는 지금은 내 맘대로 기상시간과 취침시간을 조절 할 수 있고, 부엌이 있어서 원하는 요리도 해먹을 수 있고, 또 음악도 마음대로 크게 틀어놓고 들을 수 있다. 어쩌면 더 자유롭게 지낼 수 있는 상황인데도 밤에 학교를 산책하다 켜져 있는 기숙사 불빛을 보면 기숙사에서 지내던 2년 반의 생활이 자꾸만 떠오른다. 기숙사 생활을 할 때는 당연하고 너무나 일상적 이여서 그 기간 동안은 잘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 느낌들이 시간이 지나서야 아련하게 다가오는 중이다.
 
 이제 몇 학기 남지 않은 나의 대학생활. 또 다시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며 여느 때처럼 바쁜 일상에 젖어들어 정신없이 보내겠지만 다음 학기 복학해서 다시 4.5평의 그 공간에 새로운 나의 추억과 감정을 물들일 생각을 하니 마음 한 쪽이 설렌다. 기숙사에서 나와 지내다 보니 사람이 고픈 나는 아마도 나랑 룸메이트가 되는 사람에게 애정과 관심을 듬뿍듬뿍 주지 않을까 싶다. 같이 야식으로 치킨을 먹자고 조를 예정이다.
부담스러워하면 어쩌지.
 
 지금 이 순간들도 미래의 순간들도 다 언젠가 추억이 될 것이고, 그 추억을 한 번씩 곱씹어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행복이 아닐까. 애써 기억하지 않으려 해도, 그냥 그 때의 그 기분, 날씨, 향기, 온도 이런 것이 얼핏 스치고 지나가면 순식간에 회상비디오가 재생된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고, 그렇기에 봉룡학사가 사생들에게 주는 것은 단순한 공간 그 이상인 것 같다.

 이런 봉룡학사에서 만들어지는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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