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Leading University

COMMUNITY

  • home
  • Community
  • Contents Contest
  • Previous award winning work
  • Before 2018

Community

Contents Contest

콘텐츠 공모전 | 과거수상작 | 2018년 이전 게시글의 상세 화면
[2015]비와 기숙사
No : 213 Date : 2015-11-21 Views : 3104

 

 

  비가 꽤 많이 온다. 오늘 오후부터 오기 시작한 비는 밤이 늦도록 그칠 줄을 몰랐다. 기상청은 이 비가 적어도 모레까지는 계속 될 것이라고 했다. 기상청을 그다지 신뢰하지는 않지만 비가 오는 기세를 보아하니 정말로 그럴 것도 같다. 현재 시각 12:29 AM. 나는 음악을 들으려 귀에 꼽고 있던 이어폰을 살짝 빼냈다. 통금시각까지 고작 30분이 남은 지금, 이제 슬슬 창 밖이 시끄러워질 때가 됐는데, 싶어서였다. 하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꽤 조용하다. 왜지? 원래 비 오는 날은 소음이 더 잘 들려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살짝 의아한 마음에 갸웃거리며 창문을 반쯤 열었다. 비가 와도 여전히 건조한 방 안에 습한 공기가 훅 끼쳐 올랐다. 아아, 밖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렇구나. 오늘은 비 오는 일요일 밤이니까. 원래 이런 날이지. 나는 쉽게 납득했다. 창문을 다시 닫았다. 방은 금방 다시 건조해졌다.

 


  사실 나는 건조하고 조용하기까지 한 이 방을 이틀째 혼자 지키는 중이었다. 룸메이트 언니는 금요일에 수업이 끝나자 마자 대구에 있는 집엘 간다고 했다. 주말 동안 혼자 뭐하지? 아래층에 사는 친구더러 내 방에서 놀다 가라고 할까. 나는 아주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다른 호실 친구를 방에 데려오는 게 룸메이트 언니에게 별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닐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이기도 했고, 사실은 기숙사 생활규정이 이것을 어디까지 허용해 주는지 잘 몰라서 이기도 했다. (물론 언니는 규정상 문제만 없다면 흔쾌히 허락해줄 것을 잘 알지만, 어쨌든 그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뭐, 오롯이 이틀을 혼자서 보내는 것도 괜찮지. 나는 생각했다. 금요일 수업을 마치고 오는 길에 나는 주말에 읽기 위한 책을 두어 권 빌렸다. 그간 보고 싶었던 드라마도 몇 편 봐야지, 하는 계획도 나름 세웠다. (안타깝게도 이번 주말에 책은 거의 읽지 않았다. 대신에 보고자 했던 드라마는 지겹도록 봤다.) 어쨌든 나는 혼자 보내는 기숙사에서의 이틀을 결국 다 보낸 셈이다. 지금은 12시가 넘었고, 한숨 자고 일어나면 다시 룸메이트 언니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이어폰을 끼지 않은 채로 드라마도 봤고, (물론 책은 안 읽었지만) 눈치보지 않고 노래도 흥얼거렸으며, 평소보다 자유롭게 낮잠을 잤다. 개강하고 처음으로 이틀 동안 기숙사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막상 해보니 어쩌다 한번쯤은 이런 하루를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이쯤에서 나는 간만에 방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통금시각을 앞두고 있으니 아예 기숙사 밖으로 나가는 건 무리인 것 같고, 이럴 때 내가 꼭 가는 곳이 있으니 그리로 가야겠다. 나는 슬리퍼를 꿰 신으며 생각했다.

 


  집을 떠나 타지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수십 명의 법적 동거인이 생기는 거라던가, 룸메이트와의 생활 패턴 차이라던가 하는 등의 문제는 아니다. 그건 그저, 방만 닫으면 오롯이 내 것이었던 ‘내 방’의 부재에서 오는 공허함일 뿐이다. 어떤 심각한 문제도 아니다. 그냥 그저 그럴 때도 있더라 하는 거지. 그것도 아주 가끔 말이다. 어쨌든 이런 느낌이 들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개 이런 느낌은 늦은 밤에 들기 때문에) 통금 등의 문제로 산책조차 하기 힘들 때, 나는 늘 기숙사 복도 끝 비상계단을 찾는다. 엘리베이터 옆 비상계단 말고, 반대쪽 복도 끝 비상계단. 굳이 그 곳인 이유라면, 적어도 내가 거기 있는 동안에는 아무도 오지 않을 정도로 사람이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로 맞은편 호실에 사는 친구와 확인한 결과 방음 상태도 꽤 양호하며, 무엇보다 무선 인터넷이 잘 터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선 인터넷이 잘 터지는 건 생각보다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우울해서 거기 갔다가도 방에 돌아오기 전에는 꼭 행복한 노래를 듣고 기분을 추슬러야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에겐 어떤 이유로 슬퍼서 혼자 울기에도, 아니면 또 어떤 이유로 심란해서 혼자 생각하기에도 다른 어디보다 적절한 공간이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은 전혀 우울하거나 심란하거나 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그냥 이틀 동안 아무 생각 없이 편히 쉬기만 했으니, 이쯤에서 가서 한번 앉아있다 와야겠다, 하는 생각에서 가는 것뿐.

 


  나는 슬리퍼 끝으로 바닥을 탁탁 치면서 복도를 걸었다. 비상계단 문은 아주 무겁기 때문에 아주 천천히, 하지만 조용히 열렸다. 정수리 위에서 주황빛 센서 등이 팟, 하고 켜졌다. 애초에 나는 여전히 슬리퍼를 끌고 계단을 한 두 칸 올라가 걸터앉은 다음에, 잔잔한 노래를 몇 곡 들으며 생각을 정리할 참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무거운 문을 반쯤 열고 몸을 반쯤 안으로 밀어 넣은 채로 나는 멈췄다. 센서 등은 조용히 꺼졌고, 비상계단은 다시 캄캄해졌다. 나 말고 누군가가 있다. 나는 아래층에서 느껴지는 분명한 인기척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러니까 이건,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거다. 여기서, 나 아닌 누군가가, 울고 있다. 아래층에서는 누군가가 흐느끼는 소리가 선명히 전해져 들려왔다. 어어, 어떡하지, 왜 여기서 울고 있는 거야, 어떡하지, 하면서도 내 몸은 비상계단 안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일단 인기척을 내면 안되겠지? 혼자 있고 싶어서 굳이 여기로 왔을 텐데 내가 방해할 순 없어. 나는 최대한 센서 등이 다시 켜지지 않게 조심하며 문을 조용히 닫았다. 후, 하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움직이면 센서 등이 다시 켜질까, 혹여나 슬리퍼 소리가 너무 크게 나지 않을까 싶어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방해하지 말자. 여전히 변함없이 흐느끼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반대로 숨을 죽였다.

 


   ‘나는 늘 누군가가 나를 발견할 까봐 두려웠고, 막상 아무도 나를 발견해 주지 않으면 서글펐다.’
나는 커티스 시튼펠트의 소설, 사립학교 아이들 중 한 구절이 떠올랐다. 저 사람도 누군가가 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까봐 두려울까? 그래서 저렇게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 왔을까. 아니면 저 사람도 혼자라서 서글퍼 울고 있는 걸까? 어쩌면 누군가 발견하고 위로해주기를 바라고 있을까. 울음 소리는 그칠 줄을 몰랐다. 그리고 나는 어찌 할 줄을 몰랐다. 도대체 뭐가 서글퍼서 저렇게 울고 있을까. 흐느낌 사이로 간간히 ‘개자식’ 같은 욕도 섞여 들렸다. 얼마나 화가 나고 서러우면 저럴까. 나는 괜히 한숨이 나오려는 걸 애써 참았다.

 


  내가 기숙사에서 저렇게 서럽게 울었던 건 이제까지 딱 두 번이다. 한 번은 대학에서의 첫 연애가 말도 안되게 끝났을 때. 한참 달달하게 연애하고 있는 룸메이트에게 도저히 하소연할 수가 없어서 결국 혼자서 계단께에 앉아 울었다. 이 때의 기분은 굳이 비유하자면, 마치 세탁기에서 잃어버린 양말 한 짝과도 같았던 것 같다. 제 짝을 잃어버리고 내 손으로 다시 돌아온 양말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세탁물에 섞여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나머지 한 짝 양말이 된 기분이랄까. 지금 생각해보면 참 서럽게도 울었던 것 같다. 마침 어떤 계단을 내려가던 한 외국인 사생이 내게 “Are you okay?” 라며 영어로 서툰 위로를 해 준 기억이 있다. (사실 영어를 못하는 탓에 절반밖에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 사생 덕에 나는 적어도 ‘아무도 나를 발견하지 않아 서글프지는’ 않았다, 감사하게도. 두 번째 울었던 기억은 비교적 최근의 일인데, 여느 다른 대학생들처럼, 미래와 꿈과 진로와 지금의 나에 대해 고민을 하다 하다 지쳐 울었던 기억이다. 꿈과 현재 사이의 간극에서, 지금의 내가 너무 작게만 느껴져서, 그래서 화가 나서 비상계단을 찾았었다. 그때는 나도 아래층의 저 사람처럼 내 자신을 향해 ‘개자식’ 따위의 욕을 하며 울었다. 이 때의 기분은 양말 같았다기 보다는, 차라리 변변한 휴게실도 없는 신관 10층의 정수기 같았다고 하는 게 낫겠다. 적어도 그때의 내 눈에는 남들은 다 ‘변변한 휴게실’이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 저 사생은 왜 울고 있을까. 나는 이제 저 사생을 ‘발견’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 나에게 “Are you okay?”라며 물어온 외국인 사생처럼, 저 사람을 ‘발견’해야 할까? 아니면 내 이런 약한 모습을 전혀 알아채지조차 못한 다른 사람들처럼, 모른 척 지나쳐야 하는 걸까? 혹시나 아무것도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이 발견할까 두려워하고 있을까? 아니면 차라리 나 같은 사람이라도 발견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아직도 인기척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숨을 죽인 채, 센서 등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고민하고, 고민하고, 고민하고 있던 나는 문득 어느 순간부터인가 울음 소리가 잦아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곧 울음을 완전히 그칠 모양새다. 순간 머릿속에 갑자기 뭔가 퍼뜩 스쳤다. 괜시리 마음이 급해졌다. 저 여자분이 조금만 더 여기 있어줬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조용히 일어났다. 여전히 센서 등에 온 신경을 집중해서, 최대한 아무 소리도 나지 않게끔 문을 열었다. 나는 ‘아직은’ 저 사람을 발견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문이 소리 없이 닫히는 걸 확인한 나는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내 방까지 도착했다. 아직 룸메이트 언니가 도착하지 않은 방에서, 나는 급한 손놀림으로 책상을 뒤졌다. 울고 났을 때는 단 거 먹는 게 최곤데. 아침에 기숙사 식당에서 받아온 초코우유? 살짝 집어보니 미지근한데다 이미 우유팩이 약간 팽팽하다. 이건 안되겠고. 나는 결국 그냥 핫초코 분말 스틱을 집어 들었다. 포스트잇, 포스트잇은 또 어딨더라. 책상 정리 제대로 안 해놓은 게 이런 데서 발목을 잡네. 나는 잡동사니 사이에서 겨우 포스트잇과 펜을 꺼내 들었다. 급한 손놀림으로 포스트잇에 글씨를 휘갈겼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최선의 위로를 적어 핫초코 스틱에 붙였다. 나는 서둘러 다시 슬리퍼를 꿰 신었고, 방을 빠져 나왔다. 아직은 거기 있었으면 좋겠다. 반대편 비상계단으로 뛰었다. 한 층을 내려갔고, 다시 반대쪽 복도 끝으로 갔다. 나는 저 사람을 발견하지 않았지만, 발견할 것이다. 후우, 하고 숨을 고른 나는 문에 살짝 귀를 대 보았다. (CCTV로 보면 좀 수상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아직 거기 있는 것 같다. 다행이다. 나는 문을 열면 잘 보일만한 위치에 종이컵을 놓고 핫초코 스틱과 포스트잇을 붙여두었다. 잘 보이겠지? 나오면서 꼭 확인했으면 좋겠다. 적당한 위치로 종이컵을 옮겨둔 후에 나는 얼른 다시 뒤돌아 복도로 나왔다. 여전히 저 사람을 발견하지 않으려면 얼른 이 복도에서 사라져야겠지? 나는 올 때처럼 서둘러 다시 내 방으로 향했다.

 

  이제 다시 방으로 돌아온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숨을 살짝 골랐다. 예상에 없이 갑자기 뛰었더니 숨이 약간 찼다. 내 핫초코 스틱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안 그래도 더러웠지만) 서두르느라 어수선해진 책상을 바라봤다. 내 방은 여전히 건조하고, 룸메이트는 없어서 조용하다. 바깥에는 여전히 비가 내린다. 비가 얼른 그쳤으면 좋겠다. 물론 기상청은 화요일은 되어야 비가 그칠 거라고 했지만, 기상청예보가 언제나 맞는 건 아니니까. 나는 책상을 정리하면서 생각했다. 적어도 새벽 다섯 시쯤엔 비가 그쳐있었으면 좋겠다. 또 어떤 서러운 일이 있어서 밤새 잠 못 들다가, 다섯 시 즈음 통금이 해제되는 소리에 그제야 잠이 들 기숙사의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어쩌면 또 어떤 힘든 일이 있어서 기숙사 밖에서 술로 달래다 다섯 시 즈음 기숙사로 돌아올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말이다. 게다가 내일은 월요일이기도 하니까. 꼭 비가 그쳤으면 좋겠다.

 


 

 

콘텐츠 공모전 | 과거수상작 | 2018년 이전 게시판의 이전글 다음글
Next [2015]새내기의 룸메 나이는 27 28 29 2015-11-21
Preview [2015]기숙사는 가족이다. 기숙사는 친구이다. 2015-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