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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기숙사의 의리, 그 바람
No : 195 Date : 2014-11-20 Views : 3471

 2014년 3월, 집이 서울이여서 통학 불가능한 거리는 아니었지만 기숙사 생활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봉룡학사에 첫 발을 내딛었다. 나만의 침대, 나만의 책상, 나만의 옷장과 나만의 공간. 내게 무언가가 생기는 기분은 언제나 들떴고, 짐을 풀어 그 공간들에 내 색을 칠하는 것은 들뜬 기분에 바람을 불어주었다. 처음 방에 들어왔을 때 룸메이트의 자리는 비어있었고, 룸메이트 형을 만난 것은 첫 수업을 다녀온 뒤였다. 수원에 온 첫 날이어서 주변을 친구들과 돌아다니다 지쳐 피곤한 몰골로 처음 만나게 되어 부끄러웠지만 편하게 맞아주었다. 나보다 한 학번 위인 형의 경험담을 들으며, 기숙사 생활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 마룻바닥이 아닌 돌바닥이여서 기숙사 내에서 신발을 신고 생활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신발을 벗고 살자는 이야기, 잠은 보통 1시에 자는데 자기는 불을 켜거나 소리가 커도 잘 잔다는 이야기부터 어디 휴게실이 좋다는 기숙사 시설에 관한 이야기까지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1학기 동안 룸메이트 형을 보기는 어려웠다. 잘 들어오지 않으셨고, 나 역시 동아리 공연 준비로 밖에서 보낼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룸메이트에 대한 의리고 정이고 느끼기 전에 한 학기가 흘러갔다.


 사실 나는 중학교 시절 기숙사 생활을 이미 경험해 보았다. 당시에는 5명이 한 방을 쓰고 이불을 깔아서 잤으며, 선배와 후배가 같은 방을 쓰고, 복도에서 점호를 하고 방 안에서는 룸메이트끼리 이야기하며 놀았다. 특히 방장이라는 제도가 있어 보통 3학년때부터, 나는 2학년때부터 방을 맡아 후배들을 내 동생처럼 아끼고, 방이면 방마다 문화가 있어 방에 대한 소속감을 갖고 방끼리 게임 대회도 하고 간식도 같이 나눠먹으며 뭉칠 기회가 많았다. 가족같이 지냈던 그 때의 분위기가 그리워 기숙사를 신청해서 들어왔는데, 정작 나의 1학기 시절에 기숙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 되지 못했고, 그렇다고 동아리에서의 활동이 그 때의 같이 사는 기분을 만들어주기에는 모자랐다. 같이 살며 씻는 순서나 청소 구역, 간식을 나눠 먹는 사소한 재미를 찾을 수 없었다. 특히 기숙사 내에서 라면을 먹는 것이 원래 아이들의 미숙한 뒤처리 때문에 금지된 일이었는데, 몰래 옷장 뒤나 베란다에 숨어서 라면을 먹고 형들에게 뺏기고 사감님께 혼나는 모습은 철이 없기는 했지만 즐거운 추억을 정말 많이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지관에서의 나름의 즐거움을 찾은 곳은 탁구장과 휴게실이었다. 중학교 때, 기숙사 지하에 세 개의 탁구대가 있었는데, 당시에 나는 탁구에 대해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 탁구를 처음 배우기 위해 중학교 탁구부에 들어가 마구잡이식으로 치기만 해서 늘었던 탁구는 학년이 올라가면서 주말에 하루 종일 지관 바닥보다도 차가운 돌바닥 위에서 맨발로 탁구를 치며 놀 정도로 탁구에 빠져있었다. 그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탁구장에서 LC(Learning Community) 친구들, 형들과 같이 탁구를 칠 때는 꿈꾸던 기숙사의 모습과 같아 즐거웠다. 또, 치킨이나 라면, 떡볶이 같은 먹을 것을 들고 휴게실에서 축구나 야구를 보며 앉아 있는 시간은 술을 싫어하는 내게 술자리 같은 곳이었다. 술을 잘 못 마셔서 마시면 그 곳이 어디든 일단 잠을 청한 뒤 술을 깨워야하는 나로서는 술자리에 가 있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그래서 같이 야식을 먹자고 불러서 친구들과 휴게실에서 노는 것이 정말 좋았다.

 
 그런데 2학기가 되어서, 정말로 한 방에서 같이 생활해 나가는 ‘룸메이트’를 만나게 되었다. 08학번 수학과 선배님인 이 형은 대학원을 준비하셔서 방에서 자주 공부를 하시고 식사도 방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때문에 거의 혼자 살고, 나의 생활에 아무 상관없이 지내던 1학기와는 전혀 다른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한 번은 신체검사를 하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서울에 올라가야 해서 밖에서 밤을 새고 방에 잠시 들러 짐을 챙겨 서울로 향했다. 형은 주무시고 계시는 줄 알았는데,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자고 있을 때는 조용히 다니자, 아침부터 얼굴 보고 말다투기 싫어서 메시지로 보낸다."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고 나는 놀랐었다. 일부러 큰 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짐 챙기며 나는 부스럭 소리에 충분히 깰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나갔던 내 잘못이었다. 죄송하다고 하고, 다음부터 주무시고 계실 땐 최대한 소리 나지 않게 다니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 10월에 헬스를 등록하고 10시반 수업에 가기 전까지 운동을 하기 위해, 8시에 일어나기 위해 알람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런데 룸메이트 형은 아침 8시부터 깨려는 나와 달리, 어차피 아침을 9시 반까지 주니까, 8시부터 깰 필요가 없으니 방해하지 않아 달라고 하였다. 여러 개의 알람을 우선 하나로 줄여보았지만, 이 역시 룸메이트 형도 같이 일어나서 알람을 포기하고, 그냥 일어나는 대로 운동을 가기 시작했다. 모두 1학기에는 겪지 못했던 경험이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결국 나의 생활 패턴이 룸메이트에게 피해를 주었고, 이를 고치기 위해 노력해야했다. 어느 정도 맞춰가니까 기분이 풀리고 서로 먼저 무슨 일이 있으면 말하며 맞춰 살았다. 그러면서, 조금 더 자취가 아닌 기숙사 생활을 하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읽다보면 이런 생활에서 느껴지는 ‘의리’가 과연 무엇이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의리’란 무엇일까? 사전에서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사람간의 관계에 있어 지켜야 할 바른 도리, 남남끼리 혈족 관계를 맺는 일 이라고 해두었다. 최근, 미디어에서 다루는 의리는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더라도 순전히 다른 이가 불행을 이겨내기 위해 도와주는 의로운 모습을 뜻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사전의 의미대로 서로 사람으로서 또는 사람간의 관계에 있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 그 상호 간의 예의를 지키는 삶을 2학기를 지내며 나의 무례함을 느꼈으며, 1학기에는 혈족 관계를 맺는다는 거친 표현을 순화해 말그대로 가족같이 편하게 음식도 나눠먹고 티비도 보는 것을 기숙사에서 느꼈다. 다만, 사전적인 의미는 어느정도 채운 것 같지만, 중학교 기숙사에서 느꼈던 사전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그 '의리'를 앞으로의 기숙사 생활을 하며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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