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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갈림길에서의 고민
번호 : 199 등록일 : 2014-11-20 조회수 : 4224

나는 매일매일 갈림길에서 고민한다. 엘리베이터냐 계단이냐.


처음 나는 엘리베이터의 충성심강한 신자였다. 아무리 내 눈앞에서 밑 층으로 순식간에 내려가버려도, 눈 앞에서 닫혀버려도, 다른 층에서 끊임없이 멈춰서 몇 분씩 기다리게 해도 내 한 몸 편히 아래까지 도달하게 해주는 엘리베이터에게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나의 충성심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오전에 늦잠을 자서 수업에 지각하게 생겨 나를 구원해줄 엘리베이터님께로 허겁지겁 달려갔다. 하지만 내 눈 앞에서 엘리베이터는 말이 질주하는 속도로 스쳐 가버렸고, 간신히 버튼을 눌러 탈 수 있겠다고 안도하던 나는 “조금만 기다려달란 말이야!”라고 절규하고 싶은 마음을 속으로 꾹꾹 눌러 담았다. 그렇게 으레 몇 분간 초초하게 기다려도 내가 서있는 층으로는 오지 않는 도도한 엘리베이터였다.

가장 짜증났던 고충은 엘리베이터가 한 층 한 층에서 멈춰서 내가 타는 시간이 지연될 때와 엘리베이터가 바쁜 날에 1층, 2층에서 멈춰서는 걸 보는 날이었다. 특히 한 층 한 층 멈추는 걸 볼 때마다 낮은 층에 사는 건강한 다리 가진 사람이 꼭 엘리베이터를 타야하나 하는 생각도 하며 머리에서 김이 나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적도 있었다.

또 어떤 날은 세탁을 하기 위해 먼 길을 가야 했던 나는,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 작은 세탁물을 담는 통과 무거운 세제 두 개를 낑낑대며 들고 엘리베이터 앞까지 도착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9층에서 8층으로 내려오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재빠르게 내려가기 버튼을 누르고 ‘이번에는 바로 탈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며 흐뭇하게 기다리는 순간 그 은색의 커다란 박스는 나를 약올리듯이 내 앞을 스쳐 내려가버렸다. 엘리베이터 줄을 잡아당겨 다시 내 앞으로 대령할 수도 없었던 나는 결국 기다리고 타서 내려가고 세탁실까지 가는데 몇 분을 날릴 수 밖에 없었다. 그 후로도 버튼을 눌렀는데도 멈춰주지 않는 엘리베이터를 보며 저건 엘리베이터로 둔갑한 경주마가 아닌가, 설계자가 자동차 매니아인가 하는 생각도 하고는 했다. 엘리베이터를 놓치고 함께 기다리던 사람과 얼빠진 시선을 교환하는 것도 거의 순서가 되었다. 엘리베이터는 마치 손을 흔드는데도 지나쳐 가버리는 버스와 같은 애증의 대상이었다.

매일매일 그렇게 엘리베이터에게 매달리다가 어느 날부터 그 옆의 어두운 계단이 눈에 띄었다. 가끔식 엘리베이터에게 퇴짜를 당하고 아무 생각없이 뛰어다니는 계단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자리에 없을 때 있는 것이 고마울 틈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 시간의 여유가 생기니 그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어두운 계단 통로와 엘리베이터 칸을 번갈아 쳐다보며 내가 기다리지 않아도 항상 그 곳에 있는 계단을 보며 내가 이렇게 충성스러운(?) 존재를 두고 저 까탈스러운 엘리베이터님에게 매달릴 필요가 있나 하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엘리베이터에 대한 충심을 버렸다. 더 이상 몇 분씩 제발 태워달라 ADHD마냥 앞에서 이리저리 안절부절 있을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제 매일 아침 엘리베이터님에게 제발 내 층에서 멈춰있어라 기도하며 뛰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그 날 아침 유유히 계단을 타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는 학생보다 더 빨리 (지하) 1층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전 수업이 끝난 후, 식당에서 점섬을 먹고 게이트를 지났다. 그런데 계단을 올라가다가 ‘어라? 내가 사는 층까지 계단을 몇 개 거쳐야 하더라?’하고 속으로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그랬다. 계단은 내려갈 때는 고속페달을 밟은 것처럼 빠르게 나를 밑으로 데려다 주지만, 올라갈 때는 내가 살던 지역의 100m짜리 산을 오를 때와 같은 등반의 고통을 안겨다 주었다. 운동은 될 지 모르겠지만 다리 아픈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두운 층계참을 오를 때 이제 몇 개나 남았는지 계산할 때마다 등정의 두려움을 느끼곤 했다.

그렇게 이틀 정도 계단으로 오르내리던 나는 지조 없게도 다시 엘리베이터 쪽으로 눈이 돌아갔다. 항상 나의 고장난 혈압 조절기 역할을 해주던 엘리베이터는 그래도 가끔씩은 앞에서자마자 바로 타서 편하게 내려갈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를 해주고는 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내 발은 다시 슬그머니 거울처럼 반짝반짝 윤이나는 은색 문 앞으로 향하게 되었다. 이틀 동안의 짧은 시위도(?) 끝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양다리를 걸치게 되었다. 내려갈 때는 계단으로 뛰어내려가고 올라갈 때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다시 초조하게 다리를 떨며 기다리게 되었다. 이렇게 ‘의리’를 반반으로 나누어 계단과 엘리베이터에게 배분한 것이다. 이렇게 융통성이 있어지니 착시현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엘리베이터도 좀 더 빠르게 탈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몇 초 기다리다 안 올 때는 미련없이 계단으로 걸음을 돌렸으니까.

하지만 내려가든 올라가든 무거운 짐을 들고 갈 때 계단은 뒷 산에서 에베레스트 등정으로 단숨에 레벨이 수직 상향 조정되었다. 특히 엘리베이터는 꼭대기 층에 있는데 맨 밑 층에서 어깨를 짓누르는 가방을 메고 빨리 방으로 가야할 때나 반대로 무거운 세탁물을 들고 갔는데 맨 밑층에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려야 할 때는 저절로 정신수양을 하게 되었다. 급한 성질을 가진 나로써는 몇 초 더 기다리는 것도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스트레스도 시간이 지나면서 더 이상 받지 않게 되었다. 어떤 날이던 엘리베이터는 꼭대기 층과 맨 아랫층을 바쁘게 오르내렸다. 위에서 상술한대로 얼마나 바쁜지 어떤 층에서 버튼이 눌린 것도 확인하지 않고 쌩 가버린 적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를 쓰던 계단을 쓰던 절대적으로는 그다지 시간 손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은 나는 어느 시점부터 강제 정신 수양의 성과를 얻게 되었다. 엘리베이터가 안 오면 계단 타고 가는 거고 오면 타고 가는거지 라는 여유있는 생각도 하게 되었고, 조금씩 느긋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학기 초기에 나처럼 안절부절 못하던 같은 기숙사생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조금씩 태도가 변화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처음에 엘리베이터와 계단으로 인해 받았던 스트레스도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게 있다면 여전히 내가 지각을 면하기 위해 전력질주를 해야하는 날이 많다는 것이다. 그럴 때는 엘리베이터냐 계단이냐 짧은 시간 고민하다가 계단으로 향한다. 어떤 친구는 지각을 앞두고도 엘리베이터 앞에서 10분도 기다리면서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데, 나는 엘리베이터의 의리있는 사용자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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