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종이 우산 | |||||
번호 : 194 등록일 : 2014-11-20 조회수 : 3119 | |||||
새벽 12시 50분. 어둠에 삼켜진 듯 적막한 버스 정류장. 그리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홀로 그가 서있었다. 빨리 찾아온 추위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내린 비에 옷깃을 세우며 각자의 집으로 가는 길을 더욱 재촉하는 사람들 속에 우두커니 서있던 그였기에 유독 외롭게 보였다. “어디쯤 왔어?”
늦은 시간까지 과제와의 씨름을 하던 그 시각, 고요한 적막을 깨는 핸드폰 진동소리에 나는 다급하게 방 밖으로 나와야만 했다.
“어디야? 혹시 기숙사야?”, “응, 나 기숙사야.” 휴게실로 향하며 전화를 받던 난 창 밖의 모습을 통해 비가 내리고 있음을 알아챘다. 갑자기 쏟아진 비였는지 사람들은 비를 피하기 위해 분주하게 뛰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비가 내리는데 지금 우산이 없어. 혹시 내 방에 우산이 있는데 가져다 줄 수 있어?” 조심스러운 말투였다. 반사적으로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계바늘은 새벽 12시 35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기숙사 통금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고 정류장과 기숙사간의 거리는 꽤 멀었기에 바로 가겠노라고 대답하긴 어려웠다. 내가 지금 기숙사를 나선다면 우산을 챙겨 그와 통금시간 이내에 기숙사로 돌아올 수 있을까? 만약 통금 시간 이전에 돌아오지 못한다면 곤란한 상황에 놓일 수 있었다. 평소 무리한 생활보단 규칙적이고 정해진 삶에 적응된 나에겐 맞이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었다. 또한 성인 남자 2명이 같이 한 우산을 쓰기엔 우산의 크기는 너무나 작기에 그와 내가 쓸 우산 2개가 필요하다. 그러나 며칠 전 택시에서 우산을 놓고 내려버린 나이기에 우산을 가지고 있을 리 없었다. 전화기 너머로 그는 자신의 방에서 우산의 위치를 설명하고 있었다. “어...응...” 대답을 얼버무리며 생각했다. 나갈 것인가?, 말 것인가? 고요한 빈 휴게실에서 혼자 시끄럽게 떠들고 있던 TV는 나를 더 혼란스럽게 했다.
내일 수업은 오전 9시이고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출석점검을 하는 교수님이시다. 교수님보다 먼저 강의실에 도착하지 않는다면 지각으로 인한 출석점수가 감점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어제부터 늦은 시간까지 과제로 인해 몸이 몹시 피로한 몸 상태였다. 모든 것을 종합해볼 때 나가지 않는 것이 좋은 선택이라고 마음속에서 누군가 그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결국 난 나가지 않을 적당한 핑계거리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때 아무도 없는 휴게실에서 혼자 떠들고 있던 TV에서 핑계거릴 찾고 있는 나를 비웃는 듯 웃음소리가 들렸다. 항상 그렇듯 예능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웃음소리였으리라. 하지만 왜인지 그렇게만 들렸다. 문득 창문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창문에 전화기를 들고 있는 나의 모습이 보였다. 분명히 창문에 비춰지는 것은 나의 모습이었지만 왜인지 낯설게만 느껴졌다. 전화기 너머로는 여전히 빗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순간 우연히 책에서 보았던 인디언 이야기가 떠올랐다. - “나의 마음속엔 항상 2마리의 늑대가 싸우고 있단다. 그리고 너의 마음속에도 그렇단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엔 항상 2마리의 늑대가 싸우고 있단다. 한 마리는 악이란 늑대로서 자기연민, 슬픔, 거짓말이고 다른 한 마리는 선이란 늑대로서 사랑, 평화, 의리란다.”라고 인디언이 말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인디언 손녀가 물었다. “그럼 싸움에서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인디언은 손녀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싸움에서 이기는 쪽은 네가 먹이를 주는 쪽이란다.” - 갑자기 멍한 기분이었다. 나는 악한 늑대에게 먹이를 주려고 했다. 나가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게 했던 나의 상황들은 그저 나가기 귀찮아하는 나를 변호하기 위한 자기합리화에 불가했다. 갑자기 부끄러움이 몸속에서부터 밀려왔다. “우산...가져다 줄 수 있어?” 그가 물었다. 그리고 전화기 너머 빗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어... 응, 우산 준비해서 갈게. 어디 정류장이야?” 시계바늘은 35분을 넘어 40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어서 서둘러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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